2012년 3월30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에 있는 법인택시 회사. 5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사무실 문을 열고 택시 운전을 해보겠다며 이력서를 내밀었다. 이력서를 본 회사 대표와 택시기사들은 “힘든 일을 해보지 않은 분 같고 택시를 운전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 할 수 있겠느냐”고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오전 5시 회사로 나와 차량 열쇠를 건네받고 2년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의 결근도 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24회 행정고시 합격,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경상남도 국장과 공무원교육원장, 마산시 부시장 등을 거친 ‘행정통’ 전수식 씨(58)의 얘기다. 인터뷰 약속을 정한 2일 오후 창원시 용지동 도로에서 그를 만났다. 새해 첫 해가 뜨기 전인 1일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24시간 운전대를 잡은 그는 인터뷰를 위해 겨우 3~4시간 잠을 자고 나와서인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가 전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10년 통합 창원시장 선거 후보자 시절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삭발투혼까지 보인 그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묻어났지만 이날 그의 얼굴에선 넉넉함이 풍겨졌다.

“1년만 택시 운전을 해보기로 했는데 벌써 2년하고 10개월이 흘렀네요.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세월을 잊고 삽니다.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다 보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공직시절 ‘아이디어 뱅크’로 불려

1956년 경남 합천군 가회면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전씨는 학창시절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인문계 고교에 들어갈 수 없었던 전씨는 당시 부산에 거주하던 삼촌의 권유로 학비 면제와 독일 유학도 가능하다는 국립 부산기계공고에 입학했다. 3학년 때인 1973년 옛 마산 한일합섬에 취직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원 1학년인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81년 4월 경남 의창군청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울산세무서와 제주세무서를 거쳐 1985년 경상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5년 경상남도 법무담당관 시절엔 당시 김혁규 지사의 추천으로 도정발전기획단장직을 맡아 68개 과제를 발굴해 10년 도정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 일로 그는 ‘도정의 기획·경제통’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을 얻었고 능력을 인정받아 1997년 청와대 행정관으로 발탁됐다. 이후 경상남도 경제통상국장을 맡으면서 도 출자회사인 경남무역과 마산로봇밸리를 설립했고 사천 진사공단과 통영 안정공단에 외국 기업과 조선업체를 유치하는 등 경남 미래 산업의 근간을 마련했다. 2010년 7월부터 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5년간 피선거권을 제한받는 벌금 200만원의 확정판결을 받아 2011년 12월 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직을 그만둬야 했다.

“‘도둑이야’ 하고 소리친 사건에 정작 도둑으로 지목된 사람은 무혐의로 처리되고 소리 낸 사람은 이웃의 잠을 깨운 경범죄로 처벌받은 꼴이죠.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결근 없이 34개월째 택시 운행

예고 없는 실직 상태에 놓이게 된 전씨는 운전대를 잡기까지 3개월가량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판결 때문에 이사장직을 물러나야 했으니 갑갑한 마음이 들었지만 더 이상 허송세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신적 괴로움을 잊기 위해 육체적 노동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2006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마산시장 출마를 포기했을 때 민생투어 차원에서 택시기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생한 노동현장에 스스로를 던져 나를 시험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 거죠. 공직 재임 시 말단생활을 거치지 않아 편하고 쉽게 가는 길에 익숙해져 있던 마음과 몸을 다잡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 택시운전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그의 결심에 가족과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아내에게 택시기사를 한다고 하니까 많은 일 중에 왜 하필 택시기사냐며 반대했어요. 택시회사도 저러다 곧 그만두겠지라는 눈길이었고요. 저 스스로도 진짜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죠.” 전씨는 택시 핸들을 처음 잡을 때 “마음이 너무나 복잡했다”고 했다.

“2년10개월 동안 택시를 운전하면서 장인이 돌아가신 날 딱 하루 결근했어요. 한 번 빼먹기 시작하면 계속 빠지게 되니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고 매일 스스로 다짐했어요.” 2012년 3월31일 택시기사로 변신한 전씨는 운행이 있는 날에는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5시에 아침을 먹고 5시30분 회사에 도착해 6시부터 손님을 맞는다.

그때부터 그는 하루 24시간 꼬박 일하고 하루를 쉬는 형태로 택시를 몰며 창원시내 구석구석을 누빈다.

“한 달에 12일 정도를 일하니 120만원이 손에 떨어지고 사납금을 다 넣었을 때 나오는 월급 30만~40만원을 더하면 한 달에 150만~160만원 벌어요. 노동량에 비해 적은 돈이지만 매달 나오는 공무원 연금을 보태면 생활에 큰 지장은 없어요.”

그에게 택시는 생활비를 보태고 노동의 가치를 경험하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인생과 세상을 더 알기 위한 창(窓)이기도 하다.

전씨는 2012년 6월부터 택시기사를 하면서 느낀 소회를 ‘창원에서 택시기사로 살아가기’라는 제목을 달아 틈틈이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ssjun001)에 올리고 있다. 최근 올린 글 중 도난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달 2일 사고 없이 기분 좋은 한 달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운전을 했는데 손님에게 줄 거스름돈 8만원을 도난당해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선배 기사들이 택시 좀도둑 조심하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저도 이제 완전히 택시기사 다 됐습니다.”(웃음)

하지만 그에게도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것이 있다. 바로 아는 사람이 택시에 탔을 때다.

“크게 두 가진데 하나는 측은하다는 반응과 다른 하나는 택시 운전을 정치 재개를 위한 민생투어쯤으로 치부하는 거예요. 모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내가 먼저 아는 체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특히 후배 공무원들이 탈 때 난처해진다고 말한다. “얼마 전 창원역 앞에서 택시 단속을 하던 창원시청 공무원이 운전석에 앉아있던 저를 알아보고 단속을 할지 말지 당혹스러워하더라고요.”

그는 올해 3월31일이면 ‘택시기사 전수식’으로 만 3년을 채운다. 택시기사를 하면서 지난해 딸과 아들도 결혼 시켰다.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당시 고교 1학년이던 늦둥이 막내딸에게 자극제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딸이 자신의 실망과 좌절감보다는 아빠 걱정을 먼저 해주는 것을 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어요.”

비번 땐 ‘조합 이사장’ 변신

그에게 택시기사 말고도 또 하나의 직업이 있다. 비번일 때 그는 국제이주무역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경상남도 경제통상국장을 할 때 알게 된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현 경남이주민센터) 대표와의 인연으로 2013년 3월 조합을 설립하고 줄곧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다 귀국해 현지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외국인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무역사업을 하려고 설립했어요.” 국제이주무역협동조합은 소 사육 농장이나 퇴비농장 등에서 깔개용으로 쓰는 톱밥을 수입해 파는 일을 하고 있다.

“톱밥 수입 자체가 업체 간 경쟁이 심하지만 지금은 공급처를 제법 확보해 올해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 같아요.”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해 이사장 보수는 없다.

전씨는 “협동조합 정관에 수익의 70%를 사회에 환원하도록 명시돼 있어 봉사하는 마음에 일을 하고 있지만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꼭 수익을 내겠다”고 강조했다.

■ 택시기사의 세계
전국 25만5000대 운행…법인택시, 사납금 제외 하루 10만원가량 수입


택시는 개인택시와 법인택시로 나뉜다. 전국택시운송조합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2014년 7월 말 현재 전국에는 25만5000대의 택시가 있다. 비율은 65% 대 35%로 개인택시가 더 많다. 택시 운전자는 28만5000명으로 개인택시 기사가 16만5000명, 법인택시는 12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택시 운전은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등 노동 강도가 세다. 뿐만 아니라 승객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비교적 큰 직업이다.

택시운전은 1990년대만 해도 대리운전이 없어 대기업 부장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직업이었다. 또 법인택시 경력이 쌓이면 지방자치단체별로 순위를 정해 개인택시 면허를 발급해줘 법인택시 운전자 모집에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가용 증가에다 합승 금지, 대리운전까지 더해지면서 택시 운전기사들이 3중고를 겪고 있다. 또 기존 개인면허의 과잉 발급으로 개인면허 신규 발급이 없어지면서 법인택시 운전자도 줄고 있는 형편이다. 이로 인해 택시회사들은 면허를 받은 차량을 다 운행하지 못하고 놀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근무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법인택시 운전자 평균 연령은 50대로 고령화되고 있고, 30~40대는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기사로 취업하지만 수입이 적어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인택시는 하루 400㎞ 내외를 달리고 사납금과 가스비를 제외하면 10만원 남짓 수입을 거둔다. 개인택시는 보통 하루 250㎞ 내외를 운행한다.

창원=강종효 기자 k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