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통증·우울증 딛고…김초롱 9년 만에 정상
재미 동포 크리스티나 김(30·한국명 김초롱)의 슬럼프는 너무도 어이없이 찾아왔다. 2010년 가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사임다비LPGA 대회에 참가한 그는 마사지를 받다가 갑자기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일시적인 것이려니’ 생각하고 통증을 숨긴 채 대회에 출전해 있는 힘을 다해 스윙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그의 비거리는 갑작스레 두 클럽 반이나 줄어들었다.

허리통증·우울증 딛고…김초롱 9년 만에 정상
그해 겨울 스윙을 다시 구축하고 파워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이때부터 그는 은둔자가 됐다. 연습할 때는 집 밖으로 나갔으나 연습 도중 공이 너무 가까운 곳에 떨어지면 기분이 상해 집으로 돌아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는 대회마다 커트를 통과하기 위해 애썼지만 자살 충동이 찾아왔다. 이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6개월간 약을 복용하고 나서야 감정 기복이 잦아들고 자신의 비거리가 줄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2012년 그가 거둔 최고의 성적은 6월 숍라이트클래식에서 기록한 공동 49위였다. 크리스티나 김은 2012년 말 골프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볼 스트라이킹은 한 번도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상심이 컸다”며 “평생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기량을 회복하기 시작한 크리스티나 김은 최근 과도한 연습 동작으로 이목을 끌었다. 지난 7월 브리티시여자오픈 때부터 샷하기 전 수십 차례 클럽을 들었다 놨다 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는 “벌 떼가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아 스윙을 멈춰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으나 골프팬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며 맹비난을 가했다. 그는 이를 고치는 데 주력했고 최근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크리스티나 김은 17일(한국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클럽데골프멕시코(파72·6804야드)에서 열린 로레나오초아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0만달러)에서 9년 만에 정상을 밟았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온 그는 특유의 제스처와 함께 눈물을 펑펑 쏟았다. 대회 주최자인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와 미셸 위도 그의 우승을 축하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흘 연속 선두를 달린 크리스티나 김은 이날 1타를 줄이는 데 그쳤다. 마지막 홀에서는 우승을 확정짓는 1m 파 퍼팅을 실패하면서 6타를 줄인 펑산산(중국)과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로 동타를 이뤄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 1차전을 파로 비긴 뒤 2차전에서 펑산산이 파세이브 퍼팅을 실패했고 파를 기록한 크리스티나 김은 2004년 롱드럭스챌린지, 2005년 미첼컴퍼니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에 이어 통산 세 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11세에 골프를 시작한 크리스티나 김은 2003년 LPGA투어에 데뷔해 오초아와 신인상을 다퉜다. 미국과 유럽 대표팀의 국가대항전인 솔하임컵에도 세 차례(2005·2009·2011년) 출전하는 등 맹활약했다.

그는 이날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오초아가 재기에 성공하도록 많은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우울증을 이겨낸 비결에 대해서는 “‘오초아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했다. 그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골프장에서는 천사 같다”며 “오초아처럼 두 손을 허리에 댔더니 어깨가 젖혀지면서 자세가 좋아졌고, 안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밤이 얼마나 어두웠는지에 상관없이 다음날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해가 뜬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에도 큰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26·KB금융그룹)는 이날 4타를 줄이고 합계 11언더파 단독 3위에 올랐다. 박인비는 이 대회에서 ‘올해의 선수’ 포인트 9점을 보태 226점을 쌓으며 1위인 스테이시 루이스(미국·229점)와의 격차를 3점으로 좁혔다.

■ 크리스티나 김

▶1984년 3월15일생, 11세 때 골프 입문 ▶2003년 미국 LPGA투어 데뷔 ▶2004년 롱드럭스챌린지 우승 ▶2005년 미첼컴퍼니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 우승 ▶2005·2009·2011년 솔하임컵 미국 대표 ▶2010년 가을 말레이시아에서 마사지 받다 허리 부상 ▶2012년 상금랭킹 111위에 그쳐 퀄리파잉스쿨로 강등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