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멈춘 중세 골목으로의 여행, 언덕 위 城 오르니 도나우 강 유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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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기차여행으로 만난 동유럽 도시들
(3)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3)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프라하에서 일정을 보낸 뒤 주로 넘어가는 도시는 오스트리아 빈이다. 기차로 5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한국인 여행객에게 빈은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여행지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오스트리아 대신 슬로바키아를 택했다. 낯선 동유럽 여행을 즐기는 데에는 왠지 슬로바키아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데다 물가나 호텔비도 더 싸다. 호텔비가 싼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숙소를 잡고 빈은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도 있다. 기차로 한 시간이면 간다.
체코와 갈라선 후 EU 가입·경제도 성장
프라하에서 브라티슬라바의 중앙역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역에 내리면 한 나라의 수도라기보다는 어느 지방도시의 오래된 역에 닿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만큼 작고 아담하다. 역만 작은 것이 아니다. 나라도 작다. 슬로바키아는 오랫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연방국가로 합쳐졌다. 79년간 하나의 나라로 존재하던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합의하에 평화롭게 헤어졌다. 두 나라가 갈라서게 된 데에는 서로 다른 민족 구성과 언어의 문제도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서방 자원의 투자가 체코에만 몰리고 슬로바키아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두 나라는 이렇게 불편한 동거를 하느니 차라리 이혼을 하기로 합의했다. 1993년 체코와 갈라선 슬로바키아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EU에도 가입(2004년)하면서 큰 경제 성장을 이뤘다. 슬로바키아는 이번에 여행한 동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유로를 쓴 나라다.
미하엘 문 너머 중세 도시 그대로
브라티슬라바에서 볼거리는 대부분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미하엘 성탑문을 통과하면 순간이동을 한 듯 중세의 분위기가 흠뻑 전해진다. 미하엘 성탑문은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3개의 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이라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게 된다. 규모도 작아서 구시가지 안은 두 바퀴만 돌면 머릿속에 지도가 훤히 그려질 만큼 금세 적응이 된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숍이 많지만, 알고 보면 오싹한 장소도 있다. 미하엘 성탑문 바로 왼편 벽에 걸린 빨간 두건의 두상이다. 슬로바키아에는 1844년까지 범죄자의 목을 도끼로 내리쳐 죽이는 사형 제도가 있었는데, 이 두상은 그 사형을 집행하던 망나니의 집을 뜻하는 표식이었던 것. 이야기를 듣고 나면 KKK단을 연상시키는 빨간 두건 장식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구시가지 안에는 이처럼 오싹한 장소가 있는가 하면,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뒤지게 만드는 네 개의 동상도 숨어 있다. 건물 뒤에 숨어 몰래 사진을 찍는 모습의 파파라치 동상도 있고, 나폴레옹 모자를 쓰고 벤치에 팔을 괴고 있는 남자의 동상도 있다. 그중에서도 맨홀 뚜껑에서 나오려는 듯한 포즈의 ‘맨 앳 워크(man at work)’ 가 유명하다. 사람들이 이들을 찾아 ‘인증샷’을 남기는 통에 동상들은 어느새 도시의 명물이 됐다.
UFO 다리라 불리는 현수교의 낭만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나 야경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슬라빈 언덕 위의 브라티슬라바 성에 오르면 된다. 구시가지에서 걸어서 갈 수도 있는데, 가는 길에 먼저 만나는 성 마르틴 대성당도 역사가 만만치 않다. 사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다. 헝가리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 11명의 대관식을 치른 곳이며, 베토벤의 장엄미사가 처음 연주된 곳이기도 하다. 단조롭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성 마르틴 대성당을 지나 도로를 건너면 브라티슬라바 성으로 오르는 ‘왕의 길’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이 언덕 위로 포도밭이 무성했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으리라.
브라티슬라바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속에는 도나우 강이 유유히 흐르고, 일명 ‘UFO 다리’라 불리는 현수교도 담겨 있다. 다리 중간에 비행접시처럼 생긴 전망대가 있어 붙은 별명이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동네는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선 신시가지다. 밤에는 다리 중간까지 일부러 걸어가서 뒤돌아보는 브라티슬라바 성의 야경이 근사하다. 하얗게 빛나는 성과 조명을 받은 성벽이 아름답다.
이 도시는 서두를 일이 없어 더 정이 간다. 만만한 구시가지를 느긋하게 둘러보고 일찌감치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늘어지기 좋다. 레드와인은 슬로바키아에서 나는 블라우 프랑키시 품종을 기억하자. 부드럽고 탄탄하게 잡아끄는 와인의 맛은 도시를 더 진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가볼 만한 와인바 라 비나(La Vina)
슬로바키아 와인을 시음하고 싶다는 일행을 위해 가이드가 미처 문도 안 연 집에 데리고 들어갔다. 지하의 작은 와인바인 라 비나(la-vina.sk)의 주인은 낯선 동양인들을 위해 와인 한 병을 고스란히 내놓았다. 기대 이상의 훌륭한 맛에 일행은 그 자리에서 와인 한 병을 다 비운 뒤 13유로 정도의 레드 와인을 모두 한 병씩 사들고 나왔다.
브라티슬라바=글 이동미 여행작가 ssummersun@hanmail.net /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체코와 갈라선 후 EU 가입·경제도 성장
프라하에서 브라티슬라바의 중앙역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역에 내리면 한 나라의 수도라기보다는 어느 지방도시의 오래된 역에 닿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만큼 작고 아담하다. 역만 작은 것이 아니다. 나라도 작다. 슬로바키아는 오랫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연방국가로 합쳐졌다. 79년간 하나의 나라로 존재하던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합의하에 평화롭게 헤어졌다. 두 나라가 갈라서게 된 데에는 서로 다른 민족 구성과 언어의 문제도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서방 자원의 투자가 체코에만 몰리고 슬로바키아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두 나라는 이렇게 불편한 동거를 하느니 차라리 이혼을 하기로 합의했다. 1993년 체코와 갈라선 슬로바키아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EU에도 가입(2004년)하면서 큰 경제 성장을 이뤘다. 슬로바키아는 이번에 여행한 동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유로를 쓴 나라다.
미하엘 문 너머 중세 도시 그대로
브라티슬라바에서 볼거리는 대부분 구시가지에 몰려 있다.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미하엘 성탑문을 통과하면 순간이동을 한 듯 중세의 분위기가 흠뻑 전해진다. 미하엘 성탑문은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3개의 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이라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게 된다. 규모도 작아서 구시가지 안은 두 바퀴만 돌면 머릿속에 지도가 훤히 그려질 만큼 금세 적응이 된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숍이 많지만, 알고 보면 오싹한 장소도 있다. 미하엘 성탑문 바로 왼편 벽에 걸린 빨간 두건의 두상이다. 슬로바키아에는 1844년까지 범죄자의 목을 도끼로 내리쳐 죽이는 사형 제도가 있었는데, 이 두상은 그 사형을 집행하던 망나니의 집을 뜻하는 표식이었던 것. 이야기를 듣고 나면 KKK단을 연상시키는 빨간 두건 장식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구시가지 안에는 이처럼 오싹한 장소가 있는가 하면,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뒤지게 만드는 네 개의 동상도 숨어 있다. 건물 뒤에 숨어 몰래 사진을 찍는 모습의 파파라치 동상도 있고, 나폴레옹 모자를 쓰고 벤치에 팔을 괴고 있는 남자의 동상도 있다. 그중에서도 맨홀 뚜껑에서 나오려는 듯한 포즈의 ‘맨 앳 워크(man at work)’ 가 유명하다. 사람들이 이들을 찾아 ‘인증샷’을 남기는 통에 동상들은 어느새 도시의 명물이 됐다.
UFO 다리라 불리는 현수교의 낭만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나 야경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슬라빈 언덕 위의 브라티슬라바 성에 오르면 된다. 구시가지에서 걸어서 갈 수도 있는데, 가는 길에 먼저 만나는 성 마르틴 대성당도 역사가 만만치 않다. 사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다. 헝가리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 11명의 대관식을 치른 곳이며, 베토벤의 장엄미사가 처음 연주된 곳이기도 하다. 단조롭지만 위엄이 느껴지는 성 마르틴 대성당을 지나 도로를 건너면 브라티슬라바 성으로 오르는 ‘왕의 길’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이 언덕 위로 포도밭이 무성했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으리라.
브라티슬라바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속에는 도나우 강이 유유히 흐르고, 일명 ‘UFO 다리’라 불리는 현수교도 담겨 있다. 다리 중간에 비행접시처럼 생긴 전망대가 있어 붙은 별명이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동네는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선 신시가지다. 밤에는 다리 중간까지 일부러 걸어가서 뒤돌아보는 브라티슬라바 성의 야경이 근사하다. 하얗게 빛나는 성과 조명을 받은 성벽이 아름답다.
이 도시는 서두를 일이 없어 더 정이 간다. 만만한 구시가지를 느긋하게 둘러보고 일찌감치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늘어지기 좋다. 레드와인은 슬로바키아에서 나는 블라우 프랑키시 품종을 기억하자. 부드럽고 탄탄하게 잡아끄는 와인의 맛은 도시를 더 진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가볼 만한 와인바 라 비나(La Vina)
슬로바키아 와인을 시음하고 싶다는 일행을 위해 가이드가 미처 문도 안 연 집에 데리고 들어갔다. 지하의 작은 와인바인 라 비나(la-vina.sk)의 주인은 낯선 동양인들을 위해 와인 한 병을 고스란히 내놓았다. 기대 이상의 훌륭한 맛에 일행은 그 자리에서 와인 한 병을 다 비운 뒤 13유로 정도의 레드 와인을 모두 한 병씩 사들고 나왔다.
브라티슬라바=글 이동미 여행작가 ssummersun@hanmail.net /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