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진행중인 中 위안화의 국제화…현실이 된 화폐전쟁
“화폐의 미래는 국가의 미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쑹훙빙이 쓴 ‘화폐전쟁’에 나오는 말이다. 저명한 경제학자 베리 아이켄그린은 “기축통화가 아닌 통화를 가진 국가들은 외환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원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 화폐의 힘이 곧 국가의 힘이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최근 위안화 국제화 추세를 보면 화폐가 국가의 힘을 대변하고, 국가 경쟁력이 화폐 국제화를 견인하는 실증적 사례를 보는 듯하다.

중국은 2010년 이후 무역의 힘을 이용해 위안화를 달러나 유로화 같은 국제통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 중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글로벌위안화지수(RGI)를 보면 2010년 이후 국제통화로서의 위안화 이용도는 10배 이상 증가했다. 2011년 8%이던 중국의 위안화 무역결제 비중도 16.5%(8월 기준)로 커졌다. 2020년이면 위안화는 중국 무역결제액의 30% 정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올해 9월 기준 세계 수출시장의 11.7%, 수입시장의 10.3%를 차지하고 있다. 더 주목할 것은 단순 노동력 중심 국가가 아니라 자본재 및 기술재 생산에서도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아시아 무역은 이미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 무역과의 상관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고 자본을 조달하는 화폐로서의 위안화 가치도 상승하고 있다. 위안화 양도성예금증서(CD)와 딤섬본드의 액수는 지난 5월에 7000억위안을 넘어섰다. 영국은 중국과 20억위안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위안화 유동성을 보강했고, 호주 역시 대외 준비자산의 5%를 중국 채권에 투자했다.

홍콩은 규제완화를 통해 역외에서 7500억위안의 유동성을 연말까지 공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만 역시 2012년 홍콩 런던 싱가포르에 이어 네 번째 역외 위안화 결제국이 됐고, 위안화 무역결제 비중도 빠른 속도로 홍콩을 따라잡고 있다.

아시아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도 역외 위안화센터 구축에 노력 중이다. 중국의 무역 규모는 2020년까지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모든 기업의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국이 자국통화를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면 부러운 측면도 있다. 화폐 가치의 안정적 유지는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고 미래 투자를 촉진해 경제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의 양적 완화가 종료됐고 내년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때는 국제통화로 성장하고 있는 위안화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한국도 출발은 잘된 것 같다. 하지만 역외 위안화 허브의 위상을 갖추려면 보다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위안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며, 다른 위안화센터와 네트워크도 구축해 나가야 한다. 10년 전 ‘아시아 금융허브’로의 도약을 꿈꿨지만 실패한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화폐전쟁은 이제 시작됐다.

박종훈 <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전무/수석이코노미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