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본격적인 순환출자 해소 작업에 들어간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경제민주화 입법이 한창인 가운데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기존 순환출자 공시 의무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을 때였다. 이후 삼성은 복잡하게 얽힌 지분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나갔다.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였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염두에 둔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어떤 고리 끊었나

작년 12월17일 삼성물산과 삼성전기가 삼성카드 지분 6.3%를 삼성생명에 매각한 게 삼성의 순환출자 해소의 신호탄이었다. 비금융 계열사들이 가진 금융사 지분을 금융지주 역할을 맡은 생명에 넘기면서 ‘물산→카드→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생명→전자→SDI→물산’ ‘물산→카드→제일모직→생명→화재→전자→SDI→물산’ 등의 순환출자 고리가 연쇄적으로 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순환출자 구조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하나의 고리를 없애면 여러 개의 고리가 동시에 끊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은 올 6월 카드가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 4.7%를 전자에, 생명이 가진 물산 지분 4.7%를 화재에 넘긴 데 이어 7월에 SDI가 옛 제일모직(소재 부문)을 흡수합병하며 복잡한 출자구조 정리에 나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는 작년 말 30개에서 14개로 줄었다.

계열사 간 지분 매각과 합병을 통해 이뤄지던 삼성의 순환출자 해소는 다음달 18일로 예정된 제일모직 상장으로 탄력을 받게 된다.

제일모직 상장 과정에서 SDI(지분 8.0% 중 4.0% 매각)와 카드(5.0% 전량 매각)가 보유지분 일부 또는 전량을 시장에 매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카드와 제일모직의 연결고리가 사라지면서 두 회사가 포함된 ‘생명→카드→제일모직→생명’ ‘생명→전자→카드→제일모직→생명’ 등의 순환출자 고리 4개가 없어진다.
◆남은 고리 해소는 어떻게

전문가들은 제일모직 상장은 삼성의 순환출자를 정리하는 효과 외에도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예컨대 제일모직 지분을 들고 있는 물산(1.5%), SDI(상장 후 기준 4.0%), 전기(4.0%)가 모두 지분을 정리하면 남은 순환출자 고리 10개 중 9개가 해소돼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는 ‘물산→전자→SDI→물산’ 1개만 남게 된다. 이후 이 고리만 끊어내면 순환출자 정리가 끝난다. 순환출자가 정리되면 제일모직을 정점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형성된다.

업계 관계자는 “제일모직은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 지분이 45.6%에 달해 계열사들이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그룹의 지배력 유지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말했다.

다만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그룹의 중심축인 생명, 전자, 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 또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끼리 지분을 주고받다보면 새로운 신규 순환출자 고리가 생길 수도 있다.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SDS 상장 차익 등을 통해 직접 중요 계열사 지분을 매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SDS는 이달 14일 상장한다. SDS 상장으로 이 부회장이 손에 쥐는 돈은 공모가로만 따져도 1조6500억원에 달한다. 제일모직 상장을 계기로 순환출자 해소 등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환이 급속히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