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눈] '엔저 폭탄'에 또 증시 휘청…왜 위협일까
국내 증시에 달러 강세와 동시에 '엔저 폭탄'까지 터졌다. 대표적인 수출 경쟁관계인 자동차와 화학주(株)가 급락하고 있고, 코스피지수는 닷새 만에 다시 1930선이 무너졌다. 반면 일본 닛케이지수는 7년 만에 최고치를 새로 썼다.

증시전문가들은 "달러화가 강세일 경우 자금유출이 위협 요소이지만, 통화가치 절하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면서 "그런데 엔화가 동시에 약세를 보인다면 이러한 매커니즘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달러강세에도 수출이 부진해 기업 실적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엔저 공포로 코스피 1930선 붕괴…닛케이지수, 2007년 10월 이후 장중 최고치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오후 1시26분 현재 전날보다 0.99% 내린 1933.69를 기록하고 있다. 1930선마저 위협받고 있는데 엔저 공습에 자동차, 화학, 기계, 철강금속, 건설업종이 일제히 급락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운수장비업종지수는 전날보다 2.29%의 업종하락률을 보이고 있고, 화학업종지수는 2.48% 급락한 3671.44를 나타내고 있다. 기계업종은 1.61%, 철강금속은 3.70%, 건설업종의 경우 1.89%로 일제히 급락세다. LG화학, SKC, 한화케미칼 등이 5~6%대 높은 하락률을 기록중이고, 포스코(-3%)와 현대하이스코(-8%), 현대제철(-6%), 현대차(-3%) 등이 3% 이상 빠지고 있다.

반면 일본 닛케이지수는 '엔저 효과'로 장중 장중 1만7000선을 돌파, 2007년 10월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썼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양적완화를 결정했다. 연간 국채매입 규모를 50조엔에서 80조엔으로 크게 늘린 것이다.

◆ '달러강세 + 엔화약세' 동시 진행이 가장 위협적인 이유

이은택 SK증권 투자전략 연구원은 "일본은행의 이번 추가 양적완화 정책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결정"이라며 "이 때문에 엔·달러 환율은 114엔까지 치솟았었다"고 전했다.

달러 강세도 재개될 전망이고, 원·달러 환율도 1100원선 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이 연구원의 분석이다. 따라서 '달러강세 + 엔화약세'라는 위협적인 조합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

그는 "통상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해당 국가 통화가치가 급락하는데 이때 국내 경기는 더욱 침체된다"며 "그렇지만 자국 통화 절하는 수출경쟁력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환율-수출 매커니즘의 영향으로 서서히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7년 외환위기가 좋은 예인데 1998년 수출기업 순이익이 급증했고, 당시 수출이 위기 탈출의 '1등 공신'으로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문제는 요즘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 이 연구원은 "이 때문에 달러강세 시 발생하는 환율과 수출 매커니즘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수출액은 상장기업 매출과 같은데 수출둔화는 매출에 직격탄"이라고 우려했다.

◆ 전문가들 "엔화 약세·강달러 흐름 당분간 지속될 것"

당분간 엔화 약세와 달러 강세 흐름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많다.

서대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일본 대외적으로 봤을 때 미국 경기 회복과 연준의 양적완화 종료로 인한 미국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대내적으론 추가
양적완화에 따른 정책까지 가세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확대를 감안하면 달러 대비 연 10% 수준의 엔화 약세가 내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게 서 연구원의 예상이다. 그는 또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가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시점에 단행된 것도 흥미롭다"면서 "앞으로 미국의 유동성 공급 축소에 대한 안전판 역할을 일본이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성노 KB증권 연구원은 "11월에도 달러화 강세에 대한 우려가 진행될 수 있다"며 "다만 독일 등 주요국의 잠재성장률을 기준으로 할 때 달러인덱스는 이미 균형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완만한 달러 강세 흐름이 진행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신증권 김영일 연구원의 경우 "하반기 달러 강세는 엔화 약세 영향이 컸디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달 중순 이후로 엔화 약세가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데 기술적으로 과열을 해소하는 과정이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HMC투자증권은 "일본 중앙은행의 기습적인 양적완화 확대조치가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조치를 자극할 수 있는 이슈라서 향후 원·달러 환율의 동반 상승 흐름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