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1일 일본은행(BOJ)는 이틀 간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친 후 '깜짝 금융완화책'을 발표했다. 양적완화 규모를 종전보다 10조~20조엔 늘린 연간 80조엔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장기국채 투자 규모도 기존 50조엔보다 30조엔 늘어난 80조엔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한 것은 지난해 4월 양적완화를 실시한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BOJ가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양적완화 정책을 강화한 이유는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경기 둔화 기간이 길어질 조짐을 보인 데 따른 조치다. 인플레이션 하락에 대한 우려도 빠른 결정을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박형중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이번 조치에 대해 '2% 물가목표의 조기달성'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며 "예상보다 빠른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의 주된 목적은 디플레이션 탈피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말 소비세 추가 인상(현행 8%→10%)이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해 선제적인 대응도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엔화 약세가 국내 금융시장에 얼마나 강한 충격을 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저현상이 강화되며 국내 증시와 수출기업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엔저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로 구성된 국내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실제 엔·달러 환율은 BOJ가 추가 양적완화책을 발표한 이후 급등했다. 전 거래일 엔·달러 환율은 3.22% 오른 112.36엔에 거래를 마쳤다. 이로 인해 대표 수출주인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 자동차주 삼인방은 이날 현재 4~5% 추락하고 있다.
김유겸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이 금융완화를 처음 시행한 지난해 4월 양적완화(QE) 효과를 감안해 엔·달러 환율 예상치를 올해 말 105엔, 2015년 말 125~130엔으로 상향 조정한다"며 "내년 원화가치는 선진국 통화정책의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국내 펀더멘털이 부각되면서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결국 원고엔저가 심화되고, 국내 수출기업의 고전이 예상된다"며 "국내 수출기업은 선진국의 경기부양으로 수출물량은 증가하나, 원화가치 강세와 엔화가치 약세의 이중고로 수출마진이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일본의 금융완화 정책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이 향후 소비세율을 인상하면 경기보완을 위한 금융완화 확대가 필요할 수 있다. 또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전 세계 금리가 빠르게 상승할 경우 자국의 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가 나올 변수도 존재한다.
다만 일각에선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가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를 이끌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국내 증시에는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승용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오히려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조치는 주변국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일본 추가 조치로 국내 통화정책도 추가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높이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통화정책은 경기 회복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 전까지 일본 통화정책과 높은 연동성을 나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