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거 맥주의 고향, 필젠서 취해…쿠트나호라의 해골성당서 존재의 이유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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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여행으로 만나는 동유럽 도시
유럽은 기차를 타면 별다른 국경의 제약 없이 손쉽게 여행할 수 있다. 동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체코를 시작으로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의 주변국으로 가는 기차 여행이 동유럽의 인기 코스다. 체코에서는 보통 프라하만 보고 다른 나라의 도시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프라하 말고도 기차를 타고 2시간 내에 갈 수 있는 흥미로운 도시가 여럿 있다.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자유 여행자라면 체코의 다른 도시들도 시간을 내 들러볼 만하다. 기대하지 않은 매력이 여행자를 반기는 곳이다.
필스너 우르켈의 고향, 필젠
우선 가장 인기 있는 근교 여행지 중 하나는 필젠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하는 맥주 도시로 유명하다. 프라하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걸리는 이곳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딱 좋다.
필젠이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295년.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이다.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왕의 도시(이때까지 술은 수도원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였으며, 250여가구에서 각자의 레시피대로 250가지의 각기 다른 맥주를 생산했다. 그러다 뮌헨에서 효모를 써 만든 하면발효식 맥주가 개발됐고, 요제프 그롤이라는 귀족이 필젠에 이 양조법을 전해준다. 1842년 드디어 보헤미아산 맥아와 홉, 필젠의 물과 뮌헨의 효모로 숙성시킨 맥주가 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필스너 우르켈이다. 이 맥주는 뮌헨에서 먼저 만들어진 다크라거와 달리 황금색의 밝고 옅은 색을 띠었고, 중후한 맛 대신 시원하고 상쾌한 맛이 강했다. 필젠 특유의 좋은 물 덕분이었다.
이후 필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필스너를 생산해 기차로 운반하며 맥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필스너 우르켈은 현재 우리가 가장 널리 마시는 라거 맥주의 기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필스너 우르켈 맥주 공장에서는 700여년의 역사와 양조 과정을 영어 가이드 투어로 만나볼 수 있다. 또 대형 오크통들이 가득한 지하 저장고에서 필터링을 하지 않은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투어의 하이라이트다.
오크통에서 바로 따라 주는 맥주는 홉의 진한 향과 구수하면서도 상쾌한 맛을 간직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아침부터 맥주를?’ 했던 사람도 금세 한 잔을 비우게 된다. 동행한 일행 중 한 명은 석 잔을 연거푸 마시기도 했다. 필터링 안 된 필스너 맥주로 체코 여행은 더욱 진하게 남는다.
부유했던 중세 은화의 도시, 쿠트나호라
이름도 낯선 이 도시까지 기차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0분. 13세기 엄청난 양의 은이 매장된 광산이 개발되면서 번성했던 중세의 도시이자 은의 도시다.
중세 유럽에서는 은이 화폐로 쓰였기 때문에 쿠트나호라에서 만드는 은화가 유럽 전체에서 통용되었다. 왕실 조폐소가 있었고, 한때 유럽 역사에서도 중심에 있었던 쿠트나호라는 17세기 은광이 모두 폐쇄되면서 퇴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그 부귀영화를 모두 잊은 채, 조용한 마을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이 넘쳐나는 프라하에서 빠져나와 한적하게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더 마음을 끈다. 정겨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에서 하루이틀 지내면 좋겠다고 속으로 되뇌게 된다.
쿠트나호라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이 세 개쯤 있다. 그중에서도 고딕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 바르바라 성당이 여행객의 발길을 재촉한다. 1380년대에 건축이 시작돼 150년 뒤에 완성된 성당에는 15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수호성인이 아닌 광부의 조각상 등 볼거리가 많다. 150년의 건축을 감상하기엔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부족하다.
성 바르바라 성당이 고딕의 웅장함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홀린다면 기이함으로 혼을 빼놓는 곳도 있다. 4만여명의 뼈와 해골로 만들어진 일명 해골 성당이다. 중세에 불어닥친 흑사병과 후스 전쟁으로 인해 생긴 수만명의 시신을 더 이상 매장할 수 없게 되자, 한 맹인 수도사가 죽은 이들의 뼈와 해골로 만드는 성당을 고안해 낸다.
성당 내부에는 해골을 쌓아 만든 탑과 뼈로 만든 샹들리에, 수없이 쌓인 뼈무덤이 오싹한 느낌을 전해준다. 하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 앞에 숙연함이 앞선다. 성당 안에는 침묵만이 떠돈다. 해골성당이라 불리지만 이곳의 원래 이름은 코스트니체 세드렉(Koarnice Sedlec) 성당이다.
쿠트나호라 가는 길
프라하 중앙역에서 쿠트나호라 중앙역(Kotna Hora Hlavni Nadrazi)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1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기차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해골 성당은 쿠트나호라 중앙역에서 가깝고, 마을은 메스토역에서 내리면 가깝다. czechtourism.com/p/ko-kutna-hora
쿠트나호라(체코)=글 이동미 여행작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유럽은 기차를 타면 별다른 국경의 제약 없이 손쉽게 여행할 수 있다. 동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체코를 시작으로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의 주변국으로 가는 기차 여행이 동유럽의 인기 코스다. 체코에서는 보통 프라하만 보고 다른 나라의 도시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프라하 말고도 기차를 타고 2시간 내에 갈 수 있는 흥미로운 도시가 여럿 있다.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자유 여행자라면 체코의 다른 도시들도 시간을 내 들러볼 만하다. 기대하지 않은 매력이 여행자를 반기는 곳이다.
필스너 우르켈의 고향, 필젠
우선 가장 인기 있는 근교 여행지 중 하나는 필젠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하는 맥주 도시로 유명하다. 프라하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걸리는 이곳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딱 좋다.
필젠이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295년.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이다.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왕의 도시(이때까지 술은 수도원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였으며, 250여가구에서 각자의 레시피대로 250가지의 각기 다른 맥주를 생산했다. 그러다 뮌헨에서 효모를 써 만든 하면발효식 맥주가 개발됐고, 요제프 그롤이라는 귀족이 필젠에 이 양조법을 전해준다. 1842년 드디어 보헤미아산 맥아와 홉, 필젠의 물과 뮌헨의 효모로 숙성시킨 맥주가 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필스너 우르켈이다. 이 맥주는 뮌헨에서 먼저 만들어진 다크라거와 달리 황금색의 밝고 옅은 색을 띠었고, 중후한 맛 대신 시원하고 상쾌한 맛이 강했다. 필젠 특유의 좋은 물 덕분이었다.
이후 필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필스너를 생산해 기차로 운반하며 맥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필스너 우르켈은 현재 우리가 가장 널리 마시는 라거 맥주의 기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필스너 우르켈 맥주 공장에서는 700여년의 역사와 양조 과정을 영어 가이드 투어로 만나볼 수 있다. 또 대형 오크통들이 가득한 지하 저장고에서 필터링을 하지 않은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투어의 하이라이트다.
오크통에서 바로 따라 주는 맥주는 홉의 진한 향과 구수하면서도 상쾌한 맛을 간직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아침부터 맥주를?’ 했던 사람도 금세 한 잔을 비우게 된다. 동행한 일행 중 한 명은 석 잔을 연거푸 마시기도 했다. 필터링 안 된 필스너 맥주로 체코 여행은 더욱 진하게 남는다.
부유했던 중세 은화의 도시, 쿠트나호라
이름도 낯선 이 도시까지 기차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0분. 13세기 엄청난 양의 은이 매장된 광산이 개발되면서 번성했던 중세의 도시이자 은의 도시다.
중세 유럽에서는 은이 화폐로 쓰였기 때문에 쿠트나호라에서 만드는 은화가 유럽 전체에서 통용되었다. 왕실 조폐소가 있었고, 한때 유럽 역사에서도 중심에 있었던 쿠트나호라는 17세기 은광이 모두 폐쇄되면서 퇴락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그 부귀영화를 모두 잊은 채, 조용한 마을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이 넘쳐나는 프라하에서 빠져나와 한적하게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더 마음을 끈다. 정겨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에서 하루이틀 지내면 좋겠다고 속으로 되뇌게 된다.
쿠트나호라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이 세 개쯤 있다. 그중에서도 고딕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 바르바라 성당이 여행객의 발길을 재촉한다. 1380년대에 건축이 시작돼 150년 뒤에 완성된 성당에는 15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수호성인이 아닌 광부의 조각상 등 볼거리가 많다. 150년의 건축을 감상하기엔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부족하다.
성 바르바라 성당이 고딕의 웅장함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홀린다면 기이함으로 혼을 빼놓는 곳도 있다. 4만여명의 뼈와 해골로 만들어진 일명 해골 성당이다. 중세에 불어닥친 흑사병과 후스 전쟁으로 인해 생긴 수만명의 시신을 더 이상 매장할 수 없게 되자, 한 맹인 수도사가 죽은 이들의 뼈와 해골로 만드는 성당을 고안해 낸다.
성당 내부에는 해골을 쌓아 만든 탑과 뼈로 만든 샹들리에, 수없이 쌓인 뼈무덤이 오싹한 느낌을 전해준다. 하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 앞에 숙연함이 앞선다. 성당 안에는 침묵만이 떠돈다. 해골성당이라 불리지만 이곳의 원래 이름은 코스트니체 세드렉(Koarnice Sedlec) 성당이다.
쿠트나호라 가는 길
프라하 중앙역에서 쿠트나호라 중앙역(Kotna Hora Hlavni Nadrazi)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1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기차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해골 성당은 쿠트나호라 중앙역에서 가깝고, 마을은 메스토역에서 내리면 가깝다. czechtourism.com/p/ko-kutna-hora
쿠트나호라(체코)=글 이동미 여행작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