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혈맥, 금융산업부터 살려라 (3) 해외진출 10년 이상 멀리 봐라
3년짜리 CEO·파견인력…장기적 글로벌 전략 꿈도 못꿔
인도네시아銀 과감히 인수
현지인 97% 채용해 성과낸 하나금융 '해외 M&A' 주목
미얀마 당국은 향후 위기가 와도 현지에서 철수하지 않고 금융산업을 지탱할 것이라는 신뢰가 쌓인 외국 은행에 대해 지점 설립을 허가했다는 게 현지에서 나온 분석이다.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은행들은 1990년대 초 미얀마에 진출해 20년간 신뢰를 쌓았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에 따라 미얀마를 포함해 해외점포 상당수를 폐쇄했다.
○단기 성과주의로는 성공 못한다
국내 경제의 저성장·저금리 기조와 금융시장 포화 등에 따라 국내 은행은 자산 성장세가 둔화되고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국내 경쟁은 ‘제로섬’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 신흥국 등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수익성 높은 신흥국이 부상하면서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은 지속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됐다. 국내 은행들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은행들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얀마 지점 설립 실패 사례는 국내 은행권에 두 가지 과제를 던졌다. 우선 단기적인 시야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는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해외진출 전략을 수립·시행하기 힘들다. CEO의 임기를 늘릴 수 없더라도 글로벌 전략만큼은 CEO 교체와 상관없이 꾸준히 밀고 가야 한다는 얘기다.
현지에 파견된 국내 인력도 보통 3년마다 바뀐다.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현지화가 힘든 이유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지 인력의 임기를 늘리되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성과 위주의 해외점포 평가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여전히 국내 은행 해외점포들은 설립 초기부터 본사로부터 흑자 전환을 강요받고 있다. 성과 평가가 수익성, 성장성 등 재무제표 위주로 구성된 점은 고위험 투자로 내몬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 중 하나로 해외점포 경영평가 유예기간을 설립 후 1년에서 3년으로 늘렸다. 그러나 글로벌 은행인 HSBC는 해외점포 설립 시 5년까지 단기 실적을 이유로 관련 임원을 문책하지 않는다. 국내 은행도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지 금융사 인수해 철저히 현지화해야
지점이나 법인 설립 등 전통적인 방식의 해외 진출은 신수익원 창출과 거리가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 은행의 해외점포 자산은 증가 추세지만 은행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4.4%에 불과하다. 글로벌 은행들은 30~60%에 이른다. 현지화 수준도 떨어진다. 은행 해외점포의 자산, 수익 인원이 은행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초국적화지수(TNI)’는 지난해 상반기 4.8%에 그쳤다. HSBC(64.7%), 씨티(43.7%), 미쓰비시UFJ(28.7%) 등 글로벌 은행에 한참 못 미친다.
글로벌 은행들은 현지은행 인수합병(M&A)을 통해 현지화·대형화를 이루고 이를 신수익원으로 만들었다. 세계 9위 규모로 급성장한 글로벌 은행 산탄데르는 남미 지역 중소형 현지은행들을 인수하고, 현지 경영인에게 영업을 맡겨 남미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했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은행의 해외 진출은 M&A의 역사”라며 “국내 은행의 과감한 해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투자 실패 시 결과에 대한 문책보다 의사결정 체계와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에 더 치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 가운데서도 해외 현지은행 인수 후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곳이 있다. 인도네시아 PT뱅크 외환·하나 통합법인이다. 하나은행이 2007년 인도네시아 현지은행인 PT뱅크를 인수한 후 앞서 진출한 외환은행 현지법인과 지난 2월 합친 회사다.
이 법인(하나·외환 합산 기준)은 최근 5년 연평균 대출금 증가율 34%, 예수금 증가율 24%를 기록했다. 상반기 순이익은 140억원 규모다. 전체 직원 595명 중 580명이 현지인이다. 현지은행 인수 후 현지 직원을 중용해 현지화한 것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