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업계에 중국발(發) 석탄화학 경보등이 켜졌다. 중국이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석탄화학 설비 증설에 잇따라 나서고 있어서다. 이런 추세라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셰일가스 혁명, 중국 수요 위축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석유화학 업계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미 중국의 유화제품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한국산 석유화학제품의 중국 수출이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급부상하는 중국 석탄화학

중국 석탄화학 산업은 세계 화학업계가 예의주시하는 분야다. 중국 정부가 서부내륙 지역 개발의 일환으로 석탄화학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석탄에 열을 가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의 기초 화학원료를 만드는 석탄화학은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원료로 쓰는 석유화학에 비해 생산단가가 20~30%가량 낮다. 이 때문에 중국의 대규모 석탄화학 증설이 세계 석유화학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비닐, 필름, PVC 등을 만드는 기초 화학원료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IHS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2018년까지 중국에서 진행하는 석탄화학 기반의 에틸렌 및 프로필렌 공장 신·증설 프로젝트는 모두 29개로, 559억달러가 투입될 전망이다. 이는 과거 5년 대비 투자액이 7.4배 늘어난 것이다. 신·증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중국의 석탄화학 생산능력은 연간 1710만t 규모에 이른다. 현재 연간 276만t 수준인 석탄화학 생산능력이 4년 사이 6배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이와 관련, 화학시장조사기관 아시아켐은 2018년까지 중국에서 생산하는 에틸렌 및 프로필렌의 30%가 석탄에서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황유식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위원은 “중국의 석탄화학 신·증설은 석탄 매장량이 풍부한 신장 지역과 네이멍구에 집중돼 있다”며 “중국 정부의 서부지역 개발과 맞물려 속도를 내면서 최근 세계 화학업계에서 석탄화학이 재조명받고 있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중국 석탄화학 생산이 본격화하면 중국에 석유화학제품의 45%가량을 수출하는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빠르게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석유화학 직격탄 우려

국내에서는 석탄화학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이 2008년부터 석탄에서 합성 천연가스 등을 추출하는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석탄 매장량이 많지 않은 국내에서는 석탄화학 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 연구위원은 “석탄화학은 석유화학에 비해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한 데다 물 사용량이 30배 이상 많은 단점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이 워낙 좋아 향후 화학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석탄화학을 계기로 중국의 유화산업 경쟁력도 빠르게 높아질 전망이다. 올 들어 석유화학제품의 대(對)중국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9월까지 중국에 대한 석유화학제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7% 줄어든 165억달러에 그쳤다.

중국 수출 비중이 80%를 웃도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의 중국 수출도 석탄화학에 밀려날 전망이다. 석유화학협회는 중국의 에틸렌 순수입 규모가 지난해 909만t에서 2017년 789만t으로 줄어들고 프로필렌은 2017년에 수출 물량이 수입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김평중 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중국의 석탄화학사업에 적극 참여하거나 친환경 소재 등으로 차별화하는 등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