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게운트죄네, 오데마피게, 보메메르시에, 까르띠에, IWC
예거르쿨트르, 몽블랑, 파네라이, 피아제, 리차드밀
로저드뷔, 바쉐론콘스탄틴, 반클리프아펠 등 13개 브랜드 참가
업체마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을 내세운 신상품을 선보인 이번 행사에는 1만6000여명의 시계 애호가들이 몰렸다. 원래 명품시계 회사들은 연초 스위스에서 열리는 박람회에서만 신상품을 내놓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중화권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이 급성장하자 지난해부터 홍콩에서도 전략상품을 공개하는 박람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정상급 브랜드들의 신상품을 통해 명품시계 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들여다봤다.
여성 시계, 주력으로 부상
가장 돋보인 건 여성 시계의 약진이다. 남성용 못지않은 고급 기술을 적용한 여성용 기계식 시계가 대거 등장했다. 시계가 전통적인 남성 명품으로 분류되는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다.
남성 시계만 고집하던 IWC는 처음으로 여성을 겨냥한 ‘포르토피노 미드사이즈’ 20종을 공개했다. 지름 37~40㎜의 아담한 크기에 다이아몬드를 잔뜩 두른 우아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예거르쿨트르는 버튼을 누르면 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여성 시계에 처음 탑재한 ‘랑데부 아이비 미닛 리피터’를 내놨다.
로저드뷔 ‘벨벳 컬렉션’은 여성의 밍크, 코르셋, 스타킹에서 영감을 얻은 팜파탈 콘셉트를 내세웠다. 보메메르시에의 여성 컬렉션 ‘프로메스’도 아시아에서 첫선을 보였고, 리차드밀은 아예 “올해는 여성의 해”라고 못박았다. 시계 컨설턴트 이은경 씨는 “내로라하는 정상급 브랜드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여성 시계를 쏟아냈다”며 “여성들의 기계식 시계 수요가 늘고 있음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기술력 과시 ‘氣싸움’ 볼 만
모터쇼에서 콘셉트 카가 주목받듯 시계 박람회에서도 복잡한 기능의 초고가 제품이 화제가 되기 마련이다. 전 세계 딱 1개 한정판, 무려 30억원이란 가격표를 붙이고 등장한 바쉐론콘스탄틴의 ‘매트르 캐비노티에 아스트로노미카’가 그랬다. 단순히 시·분·초 외에 일출·일몰 시간, 사계절, 십이궁도 등에 이르기까지 15개에 달하는 기능을 시계 앞뒷면에 몰아넣었다. 가격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행사장에서 누군가 바로 사 갔다는 사실이다.
몽블랑의 ‘메타모포시스Ⅱ’에서는 시계 분야를 부쩍 강화하고 있는 몽블랑의 의지가 엿보였다. 746개 부품이 들어간 이 시계는 왼쪽 볼트를 당기면 시계판 위 날개가 접혀들어가며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한다. 극장에서 막이 열리면 무대가 나타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까르띠에와 피아제는 보석 세공에서 쌓은 고난도 노하우를 시계에서 뽐냈다. 까르띠에 ‘파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드래곤 모티프 워치’는 무브먼트(동력장치)를 용(龍) 모양으로 세공했고, 피아제는 무브먼트 표면을 에나멜 기법으로 칠했다.
더 품격 있게, 클래식으로 회귀
브랜드의 전성기를 재조명하거나 오랜 유산을 강조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파네라이의 ‘라디오미르 1940 3데이즈 오토매틱’은 1940년 전후 모델의 특징을 재해석한 것이다. 파네라이라는 브랜드 특성상 디자인이 눈에 띄게 확 바뀌진 않았다. 대신 자체 개발한 P.4000 무브먼트를 탑재하는 등 기술 측면에서 진보된 모습을 과시했다.
랑게운트죄네는 간판 모델 ‘랑에1’ 탄생 20주년 기념판을, 로저드뷔는 창업자에 헌정하는 뜻을 담은 ‘오마주 미닛 리피터’를 내놨다. 시계에 감성적인 스토리를 담아내기로 유명한 반클리프아펠도 유성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형상화한 신제품으로 독특한 정체성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시계 신상품에서 클래식하고 정제된 디자인의 비중이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잘 팔릴 만한’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