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품 등 10여점 출품
프리즈마스터 아트마켓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 참가
그의 작품 세계를 먼저 주목한 것은 해외 미술계다. 토비아스 버거 홍콩 엠플러스 미술관 큐레이터는 백남준아트센터 수석 큐레이터로 일할 때인 2009년 “이승택의 작품은 유럽 현대미술의 역사를 능가했다”며 “왜 한국에선 그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영국의 ‘아트리뷰’가 꼽은 세계 미술계 파워 1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디렉터. 그도 지난해 “이승택은 세계 미술사에 남을 독자적인 작가”라고 평했다. 이씨는 15일부터 열리는 런던의 아트마켓인 프리즈 마스터에 개인부스 작가로 초대됐다. 한국 작가로선 처음이다.
‘이승택’이란 이름은 지금껏 국내에선 무명에 가까웠다. 희수(喜壽)를 맞은 2009년에야 제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받으며 존재를 알렸다.
그는 다음달 9일까지 서울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개인전 ‘거꾸로’를 연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작가의 자각상(自刻像)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그 아래 이불에는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고 쓰여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처럼 그의 인생은 ‘거꾸로’로 요약된다.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19세까지 살다 6·25전쟁 때 남으로 내려온 그는 홍익대 조각과에 들어간 뒤 니체 철학에 심취했다. 이는 작품 세계의 핵심인 ‘부정’의 기반이 됐다. 남들이 하얀색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림을 그릴 때 검은 종이에 하얀 분필로 칠했고, 1좌대 1작품이 관례였던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조각상 두 점을 얹어 제출해 출품을 거부당했다.
“어떤 작품은 화려하고 요란합니다. 그런 작품은 전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진정한 프로들은 세계 예술사조를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1966년에 만든 제 작품을 홍콩의 한 갤러리에서 사가기로 했는데, 반세기가 지난 작품이지만 생생하다고 하더군요. 남의 것을 베낀 작품은 4~5년만 지나면 쓰레기가 됩니다. 그동안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실험예술이 아닌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 도산공원의 안창호 선생 동상 건립 작업 등에 참여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서울 연남동에 있는 그의 자택은 두꺼운 도록 8권 분량에 담길 만큼 수많은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시절, 작품을 한 번도 팔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집 자체가 수장고가 됐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