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소비 '깐깐'
2만~5만원대 SPA 매출 껑충
고가 화장품·의류 판매 부진…1인당 구매액 '제자리걸음'
한국경제신문이 롯데백화점에 의뢰해 올 들어 9월까지 매출을 집계한 결과 일본 제조·직매형 의류(SPA) 유니클로가 이 백화점의 브랜드별 구매 건수 1위에 올랐다. 롯데멤버스 회원 중 롯데백화점에서 지난 1~9월 1회 이상 구매한 590만명의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SPA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유니클로는 2009년 1~9월 브랜드별 구매 건수 11위에서 5년 만에 순위가 10계단이나 상승했다. 유니클로 외에 자라가 7위, 탑텐이 23위에 오르는 등 SPA 순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SPA는 ‘패스트 패션’으로도 불리는 중저가 의류로 일상복으로 입는 바지와 셔츠 가격이 대체로 2만~5만원 선이다.
SPA는 전 연령대에 걸쳐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전 연령대에서 유니클로가 1위를 차지했다. 5년 전에는 20대에서만 유니클로가 5위에 올랐을 뿐 다른 연령대에서는 10위권에 SPA 브랜드가 없었다.
나이키 폴로 등 가격이 비교적 비싼 전통적인 인기 브랜드는 퇴조하고 있다. 나이키는 2009년 1~9월 4위에서 올 1~9월엔 13위로 떨어졌고 폴로는 18위에서 30위권 밖으로 내려갔다.
고가 화장품도 힘을 잃었다. 2009년 1~9월 롯데백화점 구매 건수 1위였던 설화수는 올 들어 16위로 내려앉았고 랑콤은 10위에서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문성남 롯데백화점 CRM(고객관계 관리) 매니저는 “고가의 유명 브랜드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실속 있는 상품을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SPA 매출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중저가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백화점의 1인당 구매금액(객단가)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1~9월 롯데백화점의 객단가는 2009년 같은 기간보다 1.7% 올라 연평균 상승률이 0.3%에 그쳤다. 지난 5년간 소비자물가지수가 12.4% 오른 것을 감안하면 백화점 객단가는 실질적으로 10%가량 하락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비침체가 장기화되고 인터넷 및 모바일 쇼핑이 확산되면서 백화점 객단가가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지영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고령화와 저성장으로 미래가 불안해지고 가계부채 수준도 높아 소비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늘기는 어렵다”며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유통채널 간 가격 비교가 쉬워져 소비자들이 한층 더 깐깐해졌다”고 말했다.
중저가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지는 한편 고가의 해외 명품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는 등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5년간 롯데백화점의 해외 명품과 보석류 매출은 연평균 8.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전체 매출 증가율(4.7%)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스포츠용품 매출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7.4% 늘어 전 상품군 중 가장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백화점 측은 골프 캠핑 등이 대중화되면서 스포츠용품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화장품 매출은 연평균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더페이스샵 미샤 등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백화점의 화장품 매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장과 아동복 성장세도 주춤해졌다. 정장 매출은 평균 1.7% 증가에 그쳤고 아동복 매출은 연평균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구두를 비롯한 잡화(4.5%)의 매출 증가율도 전체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