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내년 메모리 생산 15% 확대"…반도체 업계 '태풍'이 온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삼성전자발(發)’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그간 메모리 반도체업계는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공급 증가가 제한된 가운데 수요가 늘면서 고루 이익을 나눠 갖는 구조였다.

하지만 최근 삼성이 생산량을 급속히 늘리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1위 업체로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생산량을 늘려 경쟁사를 압도하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이에 따라 기술력이 부족한 소규모 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익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2, 3위 업체들이 어떤 대응전략을 구사할지 주목된다.

◆삼성, 내년 생산 15% 이상 늘린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생산물량을 늘리기 시작한 것은 올 상반기부터다. 휴대폰 사업 부진과 무관치 않다. 휴대폰에서 줄어드는 수익을 어디선가 보전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선 반도체 쪽에서 추가 수익을 내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삼성은 일단 D램 부문에서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미세화를 진행하고 있다. 미세화가 되면 한 장의 웨이퍼(실리콘 기판)로 만들 수 있는 반도체 수가 많아져 생산량이 늘어난다. 삼성은 올초 세계 최초로 20나노급 PC용 D램 양산을 시작했고, 지난 18일엔 같은 급의 모바일 D램도 양산에 들어갔다. D램 분야에서 20나노는 ‘한계’라는 게 일반적인 업계의 인식이었다. 또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공장에 D램 생산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다.

낸드플래시 분야의 기술 진화도 빠르다. 삼성은 아직 경쟁업체들은 시작도 못한 3차원(3D) 낸드를 이미 32층까지 쌓아 올렸다. 3D 낸드를 적용한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신제품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김기남 DS부문 반도체총괄 겸 시스템LSI 사업부장(사장)의 주도로 생산 수율(전체 생산량 중 내부 기준을 통과한 제품 비중)도 상당히 좋아졌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결과적으로 삼성의 메모리 생산량은 내년에 올해 대비 최소 15% 이상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특히 삼성은 프리미엄급 제품의 생산을 늘려 경쟁사보다 더 높은 사양의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경쟁사들은 아직 만들지 못하는 3D 낸드 제품을 경쟁사의 평면 낸드와 비슷하거나 더 싸게 판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익 극대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분기에 2조원 정도인 반도체 분야 영업이익을 3조원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삼성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업계 간 ‘구조조정’ 일어날 수도

반도체 시장의 흐름도 삼성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올 들어 꾸준히 늘던 PC용 D램 수요가 줄고, 모바일용 수요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초 마이크로소프트가 PC 가동 프로그램인 윈도 XP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예상 밖으로 PC 교체 수요가 많아졌다. PC용 D램은 만들기 어렵지 않다. 30~40나노급으로도 가능하다. D램 업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물론 4, 5위인 대만 난야, 윈본드 등도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PC용 D램 생산량을 줄였던 삼성은 눈앞의 이익을 놓쳤다.

연말부터는 PC 수요가 다시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반면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들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모바일용 고사양 D램 수요는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난야 등 4위권 이하 업체가 수익을 내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쟁업체들도 긴장감을 감추지 않는 모습이다. 한 경쟁업체 관계자는 “삼성이 기술 경쟁에서 가장 앞서가는 건 사실”이라며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면 우리에겐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완성품 업체들이 점점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 반도체를 찾고 있는데, 삼성이 이 제품들을 모두 만들 수는 없다”며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이익률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SK하이닉스가 경기 이천시에 건립 중인 M14 라인이 완공되면 기존 M10 라인을 모바일D램 생산용으로 돌려 생산량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삼성이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려도 2위권 업체들이 파산하는 ‘치킨게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업체 간 이익이 상당부분 재분배되고, 4·5위권 업체들이 설 땅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윤선/정지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