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이재용, 힘겨운 과제 맡았다"

지난해 5월, 호암상 시상식 당시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변성현 기자
지난해 5월, 호암상 시상식 당시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변성현 기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삼성그룹이 76년의 역사에서 크게 변화해야 할 지점에 서 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힘겨운 과제를 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승계를 기다리며(Waiting in the wings)'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삼성이 처한 상황과 경영권 승계작업, 이 부회장의 과제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조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두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20년 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인용, 오늘날 삼성이 연매출 400조원, 36만9000명의 직원과 74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특히 삼성전자가 라이벌 기업들을 잇달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평판 TV, 스마트폰 부문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했지만, 다시 경고 수준의 실적 발표가 뒤따른다면 변화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장기 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이 2010년 경영복귀 당시처럼 다시 돌아올 것으로 예상하지 않기 때문에 외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관심이 쏠리지만, 몇몇 인물 정보 말고는 그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소니 대 삼성'의 저자인 장세진 교수의 글을 인용해 "경영자로서 검증받지 못했다"는 말도 곁들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을 접해본 이들의 말도 인용했다. 황제경영 스타일의 아버지와 달리 겸손하고 온화한 인물로 평하고 있고, 그의 절제된 성격이 지금 삼성에는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 유능하지만 변덕스러운 기술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삼성이 파트너들과 협업하기 위해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스마트폰 경쟁사이자 반도체 고객인 애플과 협상을 벌일 때도 까칠한 스티브 잡스와 잘 지내왔다는 점을 이코노미스트는 부각했다. 잡스의 추모식에 초청받은 유일한 삼성 중역이란 사실도 내세웠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에 주목했다. 삼성이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카드→제일모직 등으로 이뤄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제일모직·삼성SDS 상장과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등의 사업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숀 코크란 CLSA증권 수석투자분석가는 "일련의 구조재편 이유로는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 강화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6조원대의 상속세 문제 해결이며 아마도 내년 초 제일모직 상장이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샤오미·화웨이 등 중국업체의 공세와 유럽의 새 브랜드 위코·아코스 등의 협공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3분의 1에서 25%대로 떨어졌다"며 삼성이 스마트기기 생태계를 지배하지 못한 점도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안드로이드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고 자체 개발한 타이젠은 보류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 아이폰 신제품이 사흘 만에 1천만대 팔린 사실과 함께 노키아·블랙베리의 운명이 얼마나 빨리 뒤바뀌었는지도 상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힘겨운 과제를 떠맡고 있다며 그가 승계할 때는 스스로 '모든 것을 바꾸라'는 연설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