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미 "편안하고 진솔하다는데…사실은 푼수에 가깝죠"
김영탁 감독의 로맨스영화 ‘슬로우 비디오’(10월2일 개봉)는 피사체의 움직임을 느린 동작으로 볼 수 있는 능력(동체시력)을 지닌 남자가 20여년 만에 첫사랑 여인과 만나 사랑을 일궈가는 이야기다. 동체시력을 가진 주인공 여장부(차태현 분)의 마음을 사로잡는 첫사랑 수미 역은 청순미의 대명사 남상미(30·사진)가 해냈다. ‘결혼의 여신’ ‘조선 총잡이’ 등 로맨스 드라마에서 단골 여주인공으로 나온 그를 22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가 시나리오보다 더 재미있게 나왔어요. 선배들(배우와 스태프)이 각본에 입체감과 색깔을 주니까 감동이 잘 살아난 거죠. 차태현 오라버니가 위기에 빠진 수미를 구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오다 넘어지는 장면에서는 울컥하더군요. 그게 영화의 성격을 집약하고 있어요. 극중의 간결한 터치의 그림들처럼 소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로맨스영화예요.”

남자는 뛰어난 순간포착 능력으로 구청 CCTV 관제센터에 근무하면서 우연히 수미를 발견하고는 행적을 뒤쫓는다. 그러나 그의 시력은 갈수록 나빠져 실명 위기로 치닫는다.

“수미는 평소 제 모습처럼 잘 꾸미지 않는 캐릭터여서 연기하기 편했어요. 화장을 약간만 하고, 머리 손질도 아무렇게나 하니까요. 다이어트도 하지 않아 오동통한 모습으로 친근감을 주는 여자예요. 저도 세안을 하루 한 번 정도만 하고 운동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수미 역은 놀면서 연기한 듯싶어요.”

그는 ‘조선총잡이’에서 자신이 맡았던 수인 역처럼 수미도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열정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다만 수인이 조선의 규수답게 일정한 규범을 따랐다면, 수미는 그런 속박을 풀어헤치고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현대 여성이라고.

“제 자신은 수미와 실제 성격이 비슷하다고 느끼는데, 주변 사람들은 수인이 저를 정말 닮았다고 말해요. 저는 로맨스물에서 진정성이 필요한 역할에 자주 기용되는 편이에요. 편안하면서도 진솔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고교 시절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얼짱녀로 소문난 뒤 2003년 MBC 드라마 ‘러브 레터’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그는 꾸준히 활동 폭을 넓히며 ‘만인의 연인’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결혼 적령기를 맞아 연애와 결혼관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연애할 때는 불같이 달아오르고 낭만적인 타입이에요. 제가 먼저 사귀자고 하고, 헤어지자고도 먼저 해요. 어느 순간 더 이상 개선되지 않겠구나 싶을 때 좋은 모습으로 ‘굿바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이게 더 잔인하다고 해요.”

그는 완벽한 남자보다는 뭔가 부족한 남자가 좋다고 했다. 완벽한 사람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는데, 부족하면 측은지심이 발동한다고.

“살짝 불쌍해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여백이 있는 남자를 원해요. 저는 푼수처럼 사람을 100% 믿고 시작하는 타입이에요.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는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