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일본의 자동차 부품업체 10개에 반(反)독점법을 위반했다며 12억3500만위안(약 2054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중국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조사받은 업종 가운데 외국기업에 부과된 최대 규모의 벌금이다. 중국 정부는 이들 업체뿐 아니라 폭스바겐 BMW 벤츠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회사들과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기술(IT)업체 등에 대해서도 반독점 조사를 해왔다. 이들 업체에 대한 처벌 조치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조사받고 있는 글로벌 기업은 일본계 기업에 떨어진 ‘벌금 폭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 사상 최대 규모 벌금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베어링 제조업체인 일본 NSK는 지난 19일 중국 정부로부터 1억7490만위안의 벌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또 다른 베어링 제조업체 NTN도 이날 1억1920만위안의 벌금이 부과됐다고 공개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NSK와 NTN을 포함, 10개 일본 자동차 부품사에 대해 중국 정부가 총 12억3500만위안의 벌금을 매겼다고 보도했다.

중국 반독점 당국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작년 하반기부터 벤츠 아우디 BMW 등 유럽과 미국계 자동차 업체의 반독점 행위에 대해 강도 높게 조사해 왔다. 이달 초에는 일본 자동차 부품회사의 조사를 마무리 지었다고 공개했다. 중국의 반독점법은 법을 위반한 기업에 직전연도 매출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 내 매출이 공개된 NSK를 기준으로 보면 이번 벌금이 직전 회계연도 매출의 2% 정도에 해당한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 정부는 작년 초부터 반독점법을 적용해 글로벌 기업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한 6개 LCD패널 제조업체는 총 3억5000만위안의 벌금을 맞았다. 미드존슨 폰테라 등 분유 제조업체 6곳에도 6억7000만위안의 벌금이 부과됐다. 이번에 일본 자동차 부품사에 부과된 벌금은 규모가 더 크다. 박제현 주중 한국대사관 공정거래관은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반독점 행위와 관련된 매출만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지만 중국은 직전 회계연도 전체 매출을 기준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처벌 강도가 세다”고 말했다.

○퀄컴 최대 61억위안 벌금 가능성

일본 자동차 부품사에 대한 이번 벌금 부과는 앞으로 다른 외국계 기업에 내려질 조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컨설팅회사 오토모티브 포사이트의 예일 장 매니저는 “벤츠와 BMW 등 독일계 자동차 업체도 직전연도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최고율의 벌금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은 중국 내 매출이 워낙 크기 때문에 벌금 규모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경제관찰보는 최근 NDRC가 아우디에 18억위안의 벌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아우디의 지난해 중국 내 매출은 250억달러(약 1540억위안)다. 퀄컴은 벌금 규모가 최대 61억위안(약 1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망했다. 퀄컴은 세계 매출의 절반가량을 중국에서 올리고 있다.

베이징의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중국도 반독점 당국 조치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 기업이 소송한 적은 없다”며 “아직 기업은 벌금을 적게 내기보다 중국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사업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