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경제가 올 2분기에 제자리걸음을 한 것으로 나타나 경기회복세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럽연합(EU) 통계청 유로스태트는 14일 유로존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잠정치가 전분기 대비 0%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 0.1%와 전분기 성장률(0.2%)보다 부진한 성적이다. 유로존 물가도 위축세로 돌아서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부추겼다. 유로존 7월 물가상승률은 전월 대비 -0.7%를 기록해 예상치(-0.6%)보다 더 악화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러시아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유로존 경제의 버팀목이던 독일과 프랑스가 동시에 흔들리는 모습”이라며 “유럽중앙은행(ECB)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 악재, 유로존 강타

유럽 최대 경제국이자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5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독일 통계청은 이날 2분기 독일 GDP 잠정치가 전분기 대비 0.2%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2년 4분기 이후 최악으로, 1분기 증가율(0.8%)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다.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한 수출 감소 여파로 지난 6월 공장 수주가 전달 대비 3.1% 줄었다. 투자자들의 경기 신뢰도를 나타내는 8월 경기예측지수는 8.6으로 전달의 27.1에서 큰 폭 하락했다.

이날 발표된 프랑스 2분기 GDP 증가율도 전분기 대비 0%에 그쳐 2분기 연속 제로 성장을 이어갔다. 이탈리아 성장률도 2분기 0.2% 감소해 재차 불황에 접어들면서 유로존 3대 경제국이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경기 둔화는 러시아의 식품 금수조치가 본격화하면 더 심화될 전망이다. 아나토리 아넨코프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경제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악화됐다”며 “러시아 제재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에 따라 유로존 성장세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나는 그리스·스페인 경제

‘빅3’가 흔들리는 동안 유로존을 재정위기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리스와 스페인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관광 등 서비스업이 살아나고 있는 데다 정부 주도의 강도 높은 개혁으로 외국인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올 2분기 GDP는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했다. 그리스는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해왔지만 작년 1분기(-6.0%) 이후 6분기 연속 마이너스 폭이 줄었다. 2분기 성장률은 2008년 3분기(-0.1%) 이후 가장 양호한 결과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그리스 GDP는 2007년 이후 최고치인 0.6%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인도 관광산업에서 성장 동력을 찾았다. 스페인은 내수경기 회복에 힘입어 2분기 GDP 증가율 0.6%를 기록, 5년여 만에 독일의 분기 성장률을 앞섰다. 지난해 스페인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사상 최대 규모인 약 6000만명으로 집계됐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경제가 예상 밖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물가상승률이 ECB 목표치에 턱없이 못 미치면서 유럽이 다시 경기 침체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ECB가 추가 경기 부양책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피터 반덴 오트 ING 유로존 이코노미스트는 “지정학적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올 하반기 성장세가 빨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보라/김순신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