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수년째 복숭아 농사를 지어온 요셉 프레세게는 지난주 아직 덜 익은 복숭아 350t을 헐값에 팔아치웠다. 러시아가 지난 6일 서방의 제재에 맞서 1년간 미국과 유럽연합(EU) 농산물 및 식품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수출길이 막힌 지 열흘이 채 안 됐지만 유럽 농부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U는 러시아의 금수조치 발표 직후 “EU의 대(對)러시아 식품 수출은 전체 수출량의 10%에 불과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이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게 현지 농민들의 반응이다. EU 28개 회원국은 지난해 총 119억유로(약 16조2300억원)어치 농산물을 러시아로 수출했다. 금수조치로 인한 손실 규모는 53억유로로 추산된다. 나라별로는 리투아니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폴란드 등이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FT는 올해 따뜻한 기온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급증해 과일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수 조치까지 더해져 농가 피해가 막심하다고 전했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에서 썩고 있는 복숭아는 최소 350만㎏에 이른다.

EU는 브라질 칠레 터키 등에 수출을 타진하는 한편 복숭아 농가에 대한 재정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EU 28개국 농업 전문가들도 14일 브뤼셀에 모여 4억2000만유로의 위기대응기금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나라별 대응책도 나오고 있다.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서는 “푸틴에 맞서기 위해 과일을 먹자”는 등의 자국 농산물 소비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