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길'과 '최경환 풋'
앨런 그린스펀(88)은 재직 당시 시장의 신뢰가 가장 높았던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었습니다. 1987년부터 18년 동안 네 번 의장을 맡으며 닷컴버블을 극복하는 등의 업적으로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지요.

그의 명성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라는 헤지펀드의 파산이 계기가 됐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등이 설립한 LTCM은 파생금융상품 가격결정이론인 ‘블랙 앤드 숄즈’ 모델을 실전에 적용해 투자의 신세계를 열었다는 극찬을 받다 일순간에 파산했습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이라는 ‘블랙 스완’의 출현을 예측하지 못해서였지요.

LTCM이 보유했던 파생상품의 장부가는 1조5000억달러. 밀려드는 금융공황의 먹구름에 시장이 패닉에 빠졌을 때 그린스펀이 등장했습니다. 세 차례의 과감한 금리인하 긴급조치를 단행했고, 풀린 돈의 힘은 시장을 극적으로 안정시켰지요. 그때부터 시장은 ‘그린스펀 풋(put)’을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위기에서도 최소한의 매도(풋) 기회를 보장해 줄 것이란 믿음이 싹튼 것이지요.

취임 3주가 막 지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두고 ‘최경환 풋’이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재정 세제 외환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지도에 없는 길’이라도 찾아가겠다는 경기회복 의지에 대한 지지가 읽혀집니다. 때 이른 ‘최경환 풋’ 회자는 양날의 칼입니다. 재직 당시 신화처럼 군림했지만 지금 그린스펀을 칭송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린스펀의 위기 해법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진단이지요.

최 부총리의 ‘지도에 없는 길’이 사실은 ‘그리스펀의 길’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과감한 금리인하와 통화팽창을 통한 경기회복 등이 그린스펀과 비슷한 정책 행보라는 평가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잡탕식이라는 혹평도 들리네요. 신자유주의적 규제개혁을 내세우면서 손쉬운 좌파적 대안에 투항하는 듯한 모순된 행보 때문입니다.아직은 ‘최경환 풋’에 신뢰를 보내고 싶습니다. 단 3주 만에 우리 경제에 활기를 더한 남다른 돌파력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상상력을 발휘해 대안을 찾아낼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백광엽 금융부 차장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