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신칩 시장지배력 남용하는 퀄컴
21세기 정보기술(IT) 혁명의 첨단에 위치한 스마트폰과 20세기 굴뚝산업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화력발전소는 매우 달라 보이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경제적 가치를 효율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제조업체나 화력발전소 모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데, 투자가 이뤄지고 난 후에는 무선통신 표준특허 보유업체나 해당 탄광 보유업체가 스마트폰 제조업체·발전소를 대상으로 독점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대규모 투자가 발생하기 전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이 존재한다. 스마트폰의 경우 4세대 이동통신기술로 LTE가 아니라 WiMAX를 선택할 수도 있었고, 국토가 광활한 미국에선 화력발전소의 탄광 선택이 가능했다. 따라서 스마트폰 제조업체나 화력발전소의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표준필수특허 보유 업체나 탄광 보유업체가 사후에 자신의 독점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화력발전소는 탄광과 1 대(對) 1 계약이 가능하므로 공급받을 석탄의 물량과 순도, 가격 조건 등을 장기계약함으로써 탄광 보유업체의 사후 기회주의적 행동 가능성을 방지했다.

스마트폰은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특허는 수만 개에 달하며, 특정 기술을 표준으로 정해 이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호환성을 달성하는 데 따른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 그래서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 같은 표준선정기구가 3G(WCDMA), 4G(LTE) 등의 통신표준을 채택해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업체와 장비생산업체들로 하여금 해당 통신표준을 준수하는 다양한 기기를 생산하도록 유도한다. 이와 동시에 표준선정기구들은 표준필수특허 보유업체에 의한 사후 독점력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체들로 하여금 표준필수특허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RAND)’ 조건으로 경쟁업체를 포함한 모든 신청 업체에 라이선스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다수의 통신 관련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퀄컴은 FRAND 확약을 위배하고 독점력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경쟁당국 중 하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부터 조사받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퀄컴은 경쟁 칩셋 제조업체들에는 자신의 표준필수특허를 라이선스하지 않고, 휴대폰 제조업체들에 직접 휴대폰 가격의 일정 비율을 받는 대가로 라이선스를 제공해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경쟁 칩셋 제조업체들에 자신의 표준필수특허를 라이선스하지 않는 것은 FRAND 확약의 명백한 위반이다. 그뿐 아니라 이는 경쟁 칩셋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사실상 퀄컴으로부터 라이선스를 취득한 휴대폰 제조업체들에만 자신의 칩셋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경쟁제한적 행위로서 문제될 수 있다.

또 퀄컴은 통화와 문자메시지 기능이 핵심인 피처폰 시절의 로열티 산정방식을 스마트폰 시대에도 요구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퀄컴의 무선통신기술과 1차적으로 무관한 운영체제·애플리케이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앱 구현을 위한 대용량 메모리, 저장장치 등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매우 커졌다. 그럼에도 퀄컴이 피처폰 시절과 동일한 로열티 산정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스마트폰 생태계에 참여하는 다른 많은 기업의 투자에 무임승차하는 특허억류 행위, 즉 사후 독점력의 남용 행위이다. 그 결과 다른 업체들의 혁신 인센티브를 떨어뜨리고 스마트폰 가격을 올리게 해 소비자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쟁제한적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차제에 퀄컴을 포함한 다국적 IT기업이 경쟁을 제한하거나 부당한 소비자 피해를 초래하는 행위로 국내 소비자나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이상승 < 서울대 경제학 교수 ssyi@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