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 토니 파델  네스트랩스 창업자…잡스가 모셔갔다, 구글이 반했다
올초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구글이 2012년 휴대폰 제조사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한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인수합병(M&A)을 발표해서다.

대상은 애플의 수석부사장 출신인 토니 파델(44)이 매트 로저스와 함께 2010년 창업한 네스트랩스였다. M&A 규모만 32억달러에 달했다. 2008년 ‘친정’인 애플에서 나와 스마트 온도조절 장치라는 다소 엉뚱한 제품을 선보인 파델은 창업한 지 3년도 안돼 현금으로 수십억달러를 쥔 억만장자가 됐다.

여전히 네스트랩스의 최고경영자(CEO)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를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2014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4위에 올렸다. 파델은 미래 핵심 산업으로 꼽히고 있는 사물인터넷(생활 속 사물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환경)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도구에 익숙한 유년기

파델의 아버지는 청바지를 만드는 회사의 영업 담당 임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스페인 톨레도에 있는 레바논계 마을에서 살았다. 파델은 “그래서 늘 크리스마스 이브면 식탁 위에 놓인 레바논 음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유년기를 회상했다.

아버지를 따라 미시간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그에게 할아버지는 많은 영향을 줬다. 그의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았다. 새장을 만들고, 잔디 깎는 기계를 좀 더 편하게 개조하는 등 항상 어떤 도구를 옆에 끼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파델은 도구를 사용하고, 개조하는 데 익숙해졌다.

파델은 어린 시절부터 소신이 확실한 편이었다. 대학교 진학 때도 그랬다. 별 다른 고민 없이 미시간대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기로 했다. 그에게 컴퓨터는 늘 주변에 놓여 있던 여러 가지 도구의 연장선이었다.

파델은 애플에 입사하기 전 1990년대 후반에 전자업체 필립스에 몸담았다. 하지만 시장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제품 개발에 대한 욕심이 강했던 그는 금세 창업을 결심한다. 그리고 창업한 회사가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개발업체인 퓨즈다. 파델이 기능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디자인이다. “시장을 주도하려면 기능과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자인을 사랑한 ‘넥스트’ 스티브 잡스

퓨즈를 운영하면서 파델은 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기능과 디자인의 결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경영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고민했고, 고민 끝에 애플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를 찾았다.

잡스는 파델이 보여준 디지털 뮤직 기기에 한 번에 반했다. 그리고 애플에서 같이 일할 것을 제안했다. 2001년 애플에 합류한 그는 처음에는 아이팟을 개발하는 팀의 컨설턴트 정도였다. 하지만 빠르게 담당한 역할이 많아지면서 팀을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시장에 선보인 제품이 아이팟이다. 기존 MP3 플레이어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꿨을 뿐 아니라 ‘애플 전성시대’의 포문을 연 제품이기도 하다.

청년기부터 바짝 밀어버린 머리 스타일을 고수한 파델은 고집도 남달랐다. 이런 그의 성격은 애플에서 아이팟을 개발하던 시절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래 최초 아이팟은 애플의 데스크톱 개인용 컴퓨터(PC) 맥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델은 계속해서 잡스를 설득했다. 맥이 아닌 일반 PC 버전의 아이팟 소프트웨어를 만들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PC 버전의 아이팟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신화’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런 경험이 있는 파델은 “창의성을 믿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확신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된다”고 말한다.

그의 확고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일화도 있다. 잡스는 원래 아이패드에 인텔 칩을 사용하려고 했다. 파델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할 정도로 강하게 반대했다. 인텔칩과 아이패드의 결합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파델은 전력을 적게 쓰고 칩 하나로 다양한 기능을 담을 수 있는 ARM 기반 칩을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관철했다.

◆끊임없는 개발 욕구…그리고 도전

파델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정에 방치된 채 소비자들에게서 멀어진 제품의 인기를 되살리고 싶었다. 가정에 여기저기 놓인 제품과 인터넷을 연결해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사용하게 만드는 작업이 길게 봤을 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폰 소프트웨어 매니저 출신인 동료 로저스와 애플을 관두고 2010년 네스트랩스를 창업하게 된 배경이다.

사실 그가 창업 후 처음 선보인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별로였다. 휠을 돌려서 실내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마트 온도조절 장치였다. 스마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방에 불이 켜져 있거나 햇볕이 강할 때를 스스로 감지할 수 있어서다. 거주자의 움직임을 분석해 집안의 히터나 에어컨도 자동 조절된다. 이렇게 쌓인 정보를 바탕으로 거주자의 생활 습관을 파악해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아이폰이나 PC를 활용해 원격 조절도 가능하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파델의 성향은 여기서도 드러났다. 온도조절 장치지만 애플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온도조절 장치는 가정의 필수품이지만 별 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도조절 장치를 소비자들이 구매하고 싶어하는 제품으로 만드는 게 제 목표죠.”

두 번째 제품은 화재·일산화탄소 감지기였다. 빵이 타는 연기인지 정말 위험한 연기인지를 구분해 음성으로 위험을 알려주는 제품이다. 이렇게 네스트랩스는 사물인터넷이라는 IT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한 대표적인 기업이 됐다.

◆구글과 만남…혁신에 대한 신념

이런 네스트랩스를 눈 여겨 본 곳이 바로 구글이다. 래리 페이지 구글 CEO는 개인 블로그에 “중요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제품을 단순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네스트랩스의 능력은 놀랍다”는 내용을 올릴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단순하게 자금을 지원하는 펀드보다 아예 시장을 함께 선도할 수 있는 파트너를 원했던 파델도 구글의 ‘러브콜’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전문가들 역시 두 기업의 시너지 효과는 폭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네스트랩스에 대한 구글의 이해도도 높았다. 파델은 “구글은 현존하는 최고인 데다 사업적으로 더 큰 성공을 위해 구글의 거대한 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구글에 초기 제품 모델과 동영상을 보여줬을 때 구글은 단번에 제품 취지를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업적 공감을 통해 올초 32억달러의 대규모 M&A가 성사됐다. 구글은 네스트랩스를 활용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전세계 스마트 홈 네트워크와 사물인터넷 시장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파델은 사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을 바꿀 만한 새로운 걸 만들려면 시장 조사기관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 대신 시장이 흘러가는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혁신이 가능해집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