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회사가 사라진 날', 산요의 몰락과정 생생히 기록…아날로그서 디지털로 바뀐 시대변화 읽지 못한 게 패인
2000년대 초반 연간 매출이 2조5000억엔에 달했던 거대 기업 산요전기. 니가타 반도체공장 지진으로 경영 위기에 몰리면서 2006년 골드만삭스 등 금융 3사로부터 3000억엔의 출자를 받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경영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으면서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신용 판매 등의 사업을 잇달아 접었고 결국 파나소닉에 회사가 팔렸다. 2011년 3월에는 상장폐지되면서 10만명의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일본 전자업계의 대표적인 ‘승자’로 불렸던 산요의 몰락 과정이다. 산요는 어떻게 이렇게 급속도로 무너진 것일까?

‘회사가 사라진 날’은 이에 대한 해답을 던진다. 기술의 중심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는 시대 변화에 산요는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고객과의 접점이 멀어진 것은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약하게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로 오랫동안 산요를 취재한 저자 오니시 야스유키는 경영진의 판단 착오를 거론하며 다른 일본 기업들도 유사한 문제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산요에 필적하는 일부 대기업이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던진다.

이 책은 산요의 예를 들어 일본 기업이 처한 지배구조상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프로야구팀 감독 자리를 그 야구팀의 토박이 선수 출신들이 차례로 맡으면서, 성적이 나빠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내부 승진한 최고경영자(CEO)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서로 봐주기’식 경영이 되기 쉽다는 얘기다.

결국 산요는 자금난으로 상품개발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양판점 등 유통회사의 가격 인하 요구를 거부하지도 못한 채 점점 더 수익성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회사가 사라진 날’은 최첨단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이 고뇌하면서, 한국 등 다른 업체로 전직하는 과정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옛 산요 직원들은 어려운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 ‘밝고 씩씩한 삶’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그 유연함과 강건함이야말로 앞으로 일본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