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2011년 10월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페일콘 콘퍼런스에서 한 스타트업 기업인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이 콘퍼런스는 스타트업 기업인들이 자신들의 실패 경험담을 후배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련됐다.

“사업 실패 후 몇 주를 두문불출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아요.”

당시 자신의 첫 사업 실패담을 털어놓던 이 스타트업 기업인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했다. 바로 차량공유서비스 우버(Uber)의 창업자이자 CEO인 트래비스 클라닉 얘기다. 2009년 설립된 우버는 불과 4년여 만에 기업가치가 182억달러(약 18조6000억원)로 불어났다. 일본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소니(168억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우버는 스마트폰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콜택시를 부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다. 콜택시 공급자는 전업 택시 운전사가 아닌 차량을 보유한 일반인이다. 이 때문에 클라닉은 전 세계 택시 사업자들에겐 ‘공동의 적’이 됐지만 미국 내 스타트업 업계에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나 제프 베저스 아마존 CEO에 비유되곤 한다. 일각에선 그를 스타트업 기업 하나로 일확천금을 거머쥔 운 좋은 사나이로 취급한다. 하지만 그는 스타트업의 본산 실리콘밸리에서 적잖은 실패를 맛봤다.

사업가 기질 타고 난 클라닉

올해 37세인 클라닉은 로스앤젤레스(LA) 인근의 시골마을 노스리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꿈은 CIA(국가정보국) 요원 같은 ‘스파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가로서의 기질이 넘쳤다고 그의 부모는 회고했다.

“클라닉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이 넘쳤고, 사람들을 잘 설득했어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이 되기에 적합한 성격이었죠.”

그의 학창시절 친구들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클라닉의 고등학교 동창생 중 한 명은 “그는 중고차 세일즈맨처럼 항상 나에게 뭔가를 팔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창생은 “클라닉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센스가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클라닉은 18세 때 그의 첫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입학시험(SAT)을 준비 중인 고등학생들에게 과외 서비스를 제공하는 ‘뉴웨이 아카데미(New Way Academy)’라는 회사였다. SAT에서 1580점을 받은 자신의 실력을 이용해 용돈이라도 벌어 볼 요량으로 시작했다.

이후 클라닉은 캘리포니아대(UCLA)에 진학해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학창 시절 그는 ‘컴퓨터 공학 학부생 연합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당시 그는 P2P 파일검색 엔진을 만드는 스타트업 스쿠어(Scour)에 입사했다. 사람들이 각종 영화·동영상 파일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였다. 클라닉은 이 회사에서 마케팅과 사업개발을 담당했다. 그는 이 회사의 직원으로 시작했지만 사실상 창업멤버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일에 대한 열정이 강한 데다 사업 수완도 좋았기 때문이다. 클라닉이 합류한 이후 스쿠어는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로 급성장했지만 1999년 냅스터라는 경쟁사가 등장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스쿠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스쿠어는 파산했다. 스쿠어에서의 실패 경험은 클라닉이 보다 강한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우버 창업으로 스타트업 업계 스타로 부상

클라닉은 2000년에 대학 친구 마이클 토드와 함께 레드 스우시(Red Swoosh)를 설립, 두 번째 사업에 도전했다. 각종 웹 콘텐츠를 이용자들에게 보다 값싸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 역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동업자인 토드와는 사사건건 대립했다. 다행히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아카마이가 레드스우시에 관심을 보여 2300만달러를 받고 회사를 넘겼다.

회사 매각으로 거액을 거머쥔 클라닉은 스페인 일본 그리스 하와이 프랑스 세네갈 등지를 떠돌며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러다가 2008년 말 동료 스타트업 기업인들과 참석한 한 포럼에서 우버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된다. 당시 그는 기사가 달린 차를 렌트했다. 하루 렌트 비용이 800달러였다. 그는 렌트비가 너무 비싸다고 느꼈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국 차량 렌트비를 주변의 많은 사람과 공동으로 분담할 수 있다면 돈을 아낄 수 있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현재 차를 쓰지 않고 있는 사람이 차가 필요한 사람의 렌터카 운전기사가 돼주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결국 우버로 발전했다. 클라닉은 2009년 시범 서비스를 거친 뒤 2010년 6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정식 서비스를 론칭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터넷 전문매체 테크크런치의 공동 창업자 마이클 애링턴은 자신의 트위터에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5성급’ 기사가 15분 만에 프리우스 차량을 몰고 내가 있는 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택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다”고 썼다.

모바일 물류회사로 진화하는 우버

클라닉은 최근 12억달러의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블랙록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등 세계 유수의 자산운용사들이 투자자로 나섰을 뿐 아니라 투자 과정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가 무려 170억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우버의 기업가치가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미 적잖은 수익을 내고 있는 데다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여타 스타트업과는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버가 향후 보다 광범위한 ‘온 디맨드(on-demand)’ 모바일 물류회사로 진화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클라닉은 종종 아마존의 베저스와 비교되곤 한다. 클라닉은 그러나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버는 어떤 다른 회사와도 비교될 수 없는 회사”라며 “나 또한 스스로를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