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우려스러웠다.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강수진 국립발레단장과 인스브루크발레단의 ‘나비부인’(사진)을 보며 든 생각이다. 강 단장은 앞서 “‘나비부인’을 국립발레단의 내년 3월 시즌 첫 작품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립발레단이 세금을 들여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색이 너무 짙고 무엇보다 작품 자체로도 공감을 주지 못했다.

줄거리는 원작인 푸치니의 동명 오페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배경으로 주인공 나비부인인 열다섯 살의 게이샤 초초와 미국 장교 핑커톤의 비극적인 관계를 그렸다. 초초는 핑커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남자에게 버림받는다. 초초는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며 핑커톤을 기다린다. 그러나 3년 뒤 아내와 함께 초초를 찾아온 핑커톤은 아들을 빼앗아가고 괴로워하던 초초는 자결한다.

이 작품은 스페인 출신 안무가인 엔리케 가사 발가 인스브루크발레단 예술감독이 만들었다. 무대에는 유럽인이 동양에 갖고 있는 환상과 왜곡된 시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리엔탈리즘이 극대화된 무대였다. 일본 현대무용인 부토와 일본식 의상, 나막신, 미닫이 목조가옥, 일본의 전통북 다이코, 히라가나가 가득한 영상, 무대에 흩날리는 벚꽃 등 일본 색채가 짙은 재료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소재들이 동양 문화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럽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활용된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이 한국 관객과 얼마나 정서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색이 짙다는 사실로 비판받는 것은 물론 위험할 수 있다. 예술은 국경을 넘어 존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단체 국립발레단이 이 작품을 공연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 전통문화 중에도 발레로 무대화할 만한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지난 5월 국립발레단의 ‘한·세르비아 수교 25주년 기념 갈라공연’ 때도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은 고구려 왕자호동과 낙랑국 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왕자호동’이었다. 강 단장은 “예술가들에게 작품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예술가 이전에 세금을 받고 일하는 예술단체의 수장이 아닌가.

이날 아쉬웠던 무대를 채운 것은 무용수들의 열연이었다. 강 단장은 이날 손끝 하나로 관객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나비부인이 핑커톤과 결혼 후 첫날밤을 보내는 파드되(2인무)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작품 이름처럼 한 마리 나비처럼 무대를 날아다녔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