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회동 한옥갤러리에서 개인전 ‘시·공·실·연(時·空·實·演)’을 갖는 중견 한국화가 차명희씨의 작품은 보는 작품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작품이다. 7월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서구 현대미술과 동양의 문인화 정신이 만나 이뤄낸 개성적인 회화세계를 보여준다.
차씨의 작품은 회색 계열의 아크릴물감을 칠해서 만든 바탕 위에 목탄선으로 생동하는 기운을 표현한 것이다. 꿈틀대는 불규칙적인 선들은 즉흥성이 강해 서양 현대미술의 자동기술법이나 액션페인팅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저마다 굵기도 다르고 농담(濃淡·짙고 엷음)에도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동양화의 필선이다.
‘바라보다’ 연작을 예로 들면 관객이 처음 바라볼 때는 물 위에서 솟아오르는 수초를 묘사한 듯한 평면적인 그림으로 다가오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3차원적 공간성이 느껴진다. 저마다 농담이 다른 선들이 교차하면서 공간적 깊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수초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필선도 특별한 형상이라기보다 사물이 품고 있는 본질적 에너지처럼 다가온다. 사물의 외형을 빌어 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동양 회화가 표현하고자 한 생성과 사멸을 반복하는 본질의 세계다.
“무엇을 특별히 그려야겠다고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레 신명을 발산하다보면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게 된다”는 작가의 말 속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랐던 동양 전통화가의 예술정신을 발견한다. (02)3673-3426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