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래 먹거리로 키워야 할 콘텐츠산업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는 지인들은 예외 없이 다양한 인종과 국가를 망라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활보하는 것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다양한 대학평가기관들이 국제화 지표를 강조한 결과다. 그래서 요즘 대학들에는 영어 강의를 늘리고 외국인 교수와 학생을 유치하는 일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돼 버렸다.

지난여름 싱가포르의 한 대학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교환학생으로 방문하고 싶은 나라 1순위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계 문화의 거대한 조류로 자리 잡아 가는 한류문화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한류문화가 자동차, 조선, 반도체, 휴대폰처럼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산업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기념하며 무역의 날을 제정할 당시 전 세계 수출 중 한국의 비중이 0.07%에서 2013년 2.98%로 성장한 것도 놀랍지만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빈약한 콘텐츠산업의 성장 속도는 더 놀랍다. 한국 콘텐츠산업은 2013년 기준 매출 91조5000억원, 수출 51억달러, 시장점유율 2.7%로 전 세계 콘텐츠시장에서 무역 순위와 비슷한 7위로 성장했다.

하지만 미래 성장동력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원천으로 앞세우기엔 난관이 너무 많다. 현 정부 들어 4대 국정기조의 하나로 문화융성을 강조하는 것은 고무할 만한 일이나 소위 문화산업이라 일컫는 콘텐츠산업의 갈 길은 정말 멀다.

무엇보다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연평균 수입은 1618만원에 불과하고 창작권에 대한 불공정거래도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렵다. 팀장급 이하 영화 스태프의 연평균 수입은 916만원에 불과하며 그나마 40%가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고 한다. 제작자들도 영세하다 보니 자금 압박으로 초기에 콘텐츠 권리를 팔아넘기는 일이 많아 배급사의 시장 지배력만 커졌지 제작자들은 성공의 과실을 나눠 갖지 못하고 있다. 인구에 회자됐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천송이가 한 ‘치맥’이라는 말 한마디로 한국 맥주의 중국 수출이 두 배나 늘었고 천송이가 쓴 화장품, 패션, 음료 매출도 폭증했지만 정작 드라마를 만든 제작자와 방송사 수입은 미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대통령 주재 회의까지 열면서 콘텐츠산업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한류육성을 위한 정책을 무더기로 쏟아낸 점은 환영할 일이지만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인프라를 갖추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콘텐츠산업은 디지털 기술 발달과 더불어 창작에서부터 유통, 소비까지 전방위에 걸쳐 파급 효과가 큰 산업이다. 컴퓨터그래픽이나 특수효과로 상상만 하던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됐고 유튜브같이 새로운 플랫폼들을 활용해 국경을 뛰어넘는 콘텐츠 유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이 엿보인다. 실제로 2008년 이후 콘텐츠산업 매출은 연 7.5%, 수출과 고용은 각각 16.9%, 2.4% 성장세를 보였다.

문화콘텐츠산업은 소비자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해 상상 이상으로 큰 파급효과를 일으킨다. 출판, 영상, 방송, 광고 등 특정 분야에만 적용되는 조세특례제한법상 조세 감면 대상을 콘텐츠산업 전반으로 확대하면 성장잠재력을 크게 키울 수 있다. 제조업처럼 정부뿐 아니라 금융권과 민간기업이 공동 출연하는 콘텐츠산업 금융보증기구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제작자들의 수익을 늘려주는 차원에서 은행권의 대출을 늘리는 것도 검토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은행들이 콘텐츠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신상품을 개발하도록 독려해야 할 것이다. ‘구름빵’ 작가의 예가 생기지 않도록 스토리 창작 능력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차별화된 인력 양성 지원 환경을 마련해야 리스크를 줄이고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한류문화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택하는 외국의 젊은 대학생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도전 열정처럼 콘텐츠산업이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의 샘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