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의 한 성당에서 둔탁한 종소리가 울린다. 종을 울리는 건 밧줄에 묶인 남자의 몸. 임무에 실패한 전직 경찰 K가 이를 발견했다. 엽기적인 사건의 참고인이 된 K는 경찰서장에게 임시 복직을 제안받고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 K는 옛 건물에 손을 대면 과거 사건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을 지녔다. 현대 프라하 건물들이 종교적으로 타락했다고 생각하는 귀족 출신 그뮌드는 K의 능력으로 현대 건축물을 중세 고딕 양식으로 복원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엽기적 살인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K는 사건의 중심에 체코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성당 일곱 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섯 개는 실존하는 곳이지만 한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중세 문화를 현대로 끌고 온 스릴러《일곱 성당 이야기》(열린책들)는 체코 작가 밀로시 우르반(사진)의 두 번째 작품이다. 1998년 현지 출간 당시 사회적·역사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체코 독자들에게 주목받아 베스트셀러가 됐다.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중 중세 수도원에 얽힌 《장미의 이름》이나 유럽 비밀 종교를 배경으로 한《푸코의 진자》를 떠올리게 한다. 우르반은 이 작품을 쓰고 ‘체코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품 배경엔 체코 사람들이 1990년대에 겪었던 정치·사회적 변화에 대한 갈등이 있다. 자본주의가 밀려드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급격한 변화에 반대해 폭력으로 전통을 복원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뮌드 일당이다. 이런 갈등이 과거 영광의 상징인 중세 건축물에 투영됐다. 체코의 정서와 역사적 배경을 잘 모른다면 한 번에 이해하긴 어렵지만 초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지적 스릴러로 손색이 없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참관하기 위해 19일 방한한 우르반은 “한국 독자들과 할 작품 이야기가 기대된다”며 “역사적 격변을 겪어 온 한국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읽어준다면 더욱 의미 있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496쪽, 1만3800원.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