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협의회가 어제 개최한 ‘섀도보팅제 폐지와 주총 의결권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내년부터 섀도보팅(shadow voting) 폐지에 따른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주총 참석률이 저조한 국내 현실에서 섀도보팅마저 없어지면 당장 정족수를 채우기조차 어렵다는 게 요지다. 특히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감사(위원) 선임부터 그렇다. 상장협이 상장사 902곳을 조사한 결과 850곳(94.2%)이 섀도보팅이 없으면 감사 선임이 곤란하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이 중 258곳은 특별결의(발행주식의 3분의 1)나 보통결의(4분의 1)도 어려워, 아예 주총 성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상장사가 감사 선임을 못 하면 여간 문제가 아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관리종목 지정 및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그러다 보니 올해 주총에서 임기가 남아 있는 감사를 사임시키고 재선임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오죽 답답하면 미리 감사를 바꿔 시간이라도 벌자는 궁리를 했을까 싶을 정도다.

정부가 섀도보팅을 폐지하는 것은 전자투표제를 활성화하고, 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자투표가 늘고 주주가 보호될 것이란 발상은 역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에 불과하다.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대다수 상장사가 감사 선임이 곤란해지는 현실을 분석하고 대책부터 강구하는 게 순서다. 전자투표를 늘리려다 정작 주총 성립조차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난센스다. 섀도보팅에 따른 한계기업의 경영부실 은폐가 문제라면 섀도보팅을 자주 요청하는 의심스런 상장사들의 명단을 공시하면 될 일이다.

한국 증시는 대주주 독단을 막는다는 허울 아래 선진국의 별의별 제도를 다 들여왔다. 막상 현실에선 구성의 오류가 벌어진다. 소액주주 보호, 대주주 3%룰, 지배구조 개선 등을 한데 모아놓으니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는 식이다. 선진국에는 대주주 의결권 제한이 없고, 주총 결의도 출석의결권의 과반수다. 선진국들이 다 허용하는 장기투자자 차등의결권은 왜 허용하지 않나. 정부는 기업의 주총을 정치판의 선거 같은 권력 쟁탈전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