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단장이 뇌 기능지도 작성을 위해 동료 연구원과 쥐의 뇌를 관찰하고 있다. KIST 제공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단장이 뇌 기능지도 작성을 위해 동료 연구원과 쥐의 뇌를 관찰하고 있다. KIST 제공
“여러 가지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뇌의 기능지도를 완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무리 좋은 치료약이 있어도 뇌의 어느 부위에 적용할지 모르면 말짱 도루묵이죠.”

15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난 이창준 신경과학연구단장은 현재 진행 중인 뇌 지도 프로젝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단장의 연구팀은 뇌세포에 빛을 쏘여 반응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뇌의 특정 부위가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치 등을 이용했던 기존 연구가 넓은 부위의 대략적인 기능밖에 알 수 없었던 반면 빛을 이용한 방식은 뇌의 특정 세포 수준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뇌의 기능지도가 완성되면 여러 신경성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해파리의 형광 유전자 이용

빛을 이용한 뇌 연구에는 해파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몇몇 종류의 해파리는 빛을 쏘이면 다시 형광색 빛을 내뿜는데 이는 해파리가 가지고 있는 녹색형광단백질(GFP) 때문이다. 해파리에서 추출한 GFP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이식한 뒤 이 바이러스를 쥐나 원숭이 등의 뇌에 감염시킨다. 바이러스는 연구진이 목표로 삼은 뇌세포를 형광세포로 만든다. 빛을 받은 형광세포가 활성화되면 녹색 빛을 내뿜는데 이를 통해 뇌세포가 활성화됐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 단장은 “쥐의 두개골을 열고 뇌에 빛을 쏘이면서 특정 행동을 시키면 연관 뇌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며 “활성화된 세포와 특정 행동 간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것이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뇌의 각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규명해 전체적인 뇌 지도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인간과 뇌 구조가 비슷한 원숭이는 인간 뇌 연구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뇌의 각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면 신경성 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해진다. 이 단장은 “뇌의 특정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발생하는 질환의 경우 그 부위의 활동을 억제하는 물질을 투여해 스위치를 끄는 것처럼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킨슨병 치매 자폐증 우울증 등 신경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비신경세포 연구 신기원

이 단장의 또 다른 연구 분야는 뇌의 비신경세포 연구다. 그는 2010년 제자였던 윤보은 단국대 교수와 함께 비신경세포도 신경세포와 마찬가지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지금껏 신경세포는 도파민 엔도르핀 등 신경전달물질을 만들고 분비하는 반면 비신경세포는 신경전달물질을 청소하고 신경세포에 영양분을 제공한다고만 알려졌었다. 이 단장은 “신경세포는 즉각적인 자극을 전달하지만 비신경세포는 느리고 지속적인 자극을 전달한다”고 했다. 이 연구는 세계적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에 실리며 주목받았다.

비신경세포는 지능과도 관계가 깊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분석한 결과 신경세포는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는 반면 비신경세포는 일반인보다 30%가량 많았다”며 “지능의 차이는 비신경세포량의 차이와 관계가 깊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비신경세포는 뇌의 80%가량을 차지하면서도 20% 정도에 불과한 신경세포에 가려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다”며 “아직도 비신경세포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는 만큼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