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H형강업체들이 반덤핑 제소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것은 더 이상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견뎌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라는 점, 중국에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많은 한국 기업들이 생산거점을 두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지난 수년간 고통을 감내해왔지만 이제 사업의 존폐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하소연이다.

○동국제강 적자 전환

지난해 6월 소형 규격기준 t당 68만~69만원(말일 기준) 선이던 중국산 H형강의 국내 유통가격은 이달 초 59만원으로 1년 새 14.4% 떨어졌다. 올 들어 중국산 H형강은 지난 1월 말 t당 66만원에서 2~4월 62만원, 5월 60만원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국내산 H형강의 이달 유통가격은 t당 77만원으로 중국산보다 당 30.5%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격차로 중국산 수입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수입량은 총 62만1988으로, 부동산경기 침체로 전년(58만8873)보다 5.6%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5년 전인 2009년(36만3083)과 비교하면 62.1%나 폭증했다.

국내 업체들은 점유율 하락과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동국제강의 점유율은 25%대에서 20%대로, 현대제철은 50%대에서 40%대로 하락했다”고 말했다.

특히 H형강이 주력 제품인 동국제강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1분기 동국제강은 매출 1조4912억원, 영업손실 13억원을 기록해 5분기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동국제강은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손실을 무릅쓰고 가격을 당 73만원에서 63만원으로 낮췄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중 FTA에 영향 줄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는 오는 7월 말까지 반덤핑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조사가 확정되면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각각 3~5개월 진행한다. 덤핑 혐의가 인정되면 기획재정부는 중국산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중국 내 유통가격과 한국에서 수입하는 가격이 비슷해지도록 관세를 올리게 된다.

중국 기업에 대한 국내 업계의 반덤핑 제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무역위원회는 중국산 합판에도 최대 27.2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품목과 달리 H형강이 조(兆)단위의 대규모 시장이라는 점, 철강이 양국의 주력 산업이라는 점 등에 비춰볼 때 향후 양국 통상관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양국 정부가 연내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일정 부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정부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번 제소에 따른 중국 철강업체들의 반발을 중국 정부가 고스란히 끌어안을 경우 양국 간 통상관계가 급랭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세종=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