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으로 손꼽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에는 ‘전속 가수’가 없다. 모든 성악가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이듬해 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 소프라노 홍혜경(56)은 이런 메트에서 3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노래를 불러왔다. 어느덧 메트 소속 여성 성악가 중 ‘최고참’이 됐다. 이런 꾸준함이야말로 ‘한국이 낳은 최고의 소프라노’란 수식어의 원천인 셈이다.

오는 12일 예술의전당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여는 소프라노 홍혜경.
오는 12일 예술의전당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여는 소프라노 홍혜경.
그가 오는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한국 청중들과 4년 만에 만난다.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이다. 1984년 11월 처음 메트 무대에 서면서 불렀던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 왕의 자비’ 중 세르빌리아의 ‘그를 위한 당신의 눈물은’부터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푸치니의 ‘라 보엠’ 중 미미의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공연에 앞서 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홍씨는 30년간 메트에서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로 “조급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지켜나가는 것”을 꼽았다.

“젊을 때는 테크닉과 상관없이 젊음 그 자체만으로 노래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 믿다가는 금방 무너집니다. 목소리는 35세까지 계속 성장해요. 내 타고난 목소리가 무엇인지, 한계는 어디인지를 알아야죠.”

홍씨는 자신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조바심내지 않고 기다렸다. 그는 데뷔 이후 350여회 무대에 서며 40개 이상의 배역을 소화했다. 하지만 그를 대표하는 배역 중 하나인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2004년에서야 처음으로 맡았을 정도다.

데뷔 때부터 동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역, ‘나비부인’의 초초상 역을 제안받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역을 맡지 않았다. 홍씨는 “젊은 성악가들이 조급한 마음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맡아 목이 망가지는 것을 많이 봤다”며 “목소리에 맞는 역을 골라 갈고 닦아야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35세까지는 목소리가 성장하고 45세까지는 경력을 쌓는 시기, 다음 55세까지는 가수로서 최전성기라고 그는 구분했다.

“55세까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한 성취예요. 이제는 55세를 넘었으니 어떻게 성악가로서의 인생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부터 홍씨는 연세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 와보니 학생들이 다들 자식뻘이더라고요. 선생보다는 엄마 같은 기분입니다. 제가 공부할 때 주변에 경험 많은 오페라 가수가 있었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테크닉도 가르치지만 음악가로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지 개인적 경험도 전해주고 싶어요.”

최근 공석이 된 국립오페라단 단장직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오페라단을 이끌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은 없을까.

“동양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로 각각 중국과 일본이 배경인 ‘투란도트’와 ‘나비부인’이 유명하죠. 아직까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유명 작품은 없어요. 한국 작곡가 누군가가 아름다운 한국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어 준다면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1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4만~12만원. 1577-5266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