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의 일이다. 좌익 진영의 소셜 텍스트지에 한 편의 논문이 날아들었다. 뉴욕대 수리 물리학자인 앨런 소칼이 쓴 이 논문은 ‘과학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는 모두 상대적인 것’이라는 과학 상대주의를 시인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논리는 종종 천안함 사건조차 부정하는 한국 좌익의 레토릭으로도 차용된다. 어떻든 이 논문은 보기에 따라 우파 물리학자의 사상적 전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과학사회학 진영은 소칼의 전향을 환영하면서 즉각 이 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아뿔싸! 이 논문은 가짜였다. 소칼은 좌익 용어로 뒤죽박죽인 엉터리 논문을 썼고 이를 편집실에 보냈다. 잡지가 발간된 얼마 후 소칼은 그것은 장난으로 쓰여진 가짜라고 폭로했다. 그들에겐 논문의 진위조차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소칼, 화염병을 던지다’라고 썼다. 사건의 경과와 과학사회학에 대한 비판은 ‘지적사기’(한국경제신문 간행)라는 단행본으로 나와 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연구진실성을 둘러싼 논쟁이 모처럼 경제학계의 화제로 등장했다. 피케티는 이미 록스타를 능가하는 인기를 끌며 미국 대학들을 순회하고 있다. 진실성 논쟁을 일으킨 논문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이 금세기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했던 바로 그 ‘자본 21세기’다. 자산(富)의 이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능가하면서 구조적 불평등이 장기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2% 이상의 부유세를 도입하고 80% 이상의 소득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바로 그 주장 말이다. 그런데 그 근거들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화염병을 던진 곳은 놀랍게도 지난 주말 파이낸셜타임스(FT)였다. FT에 따르면 피케티의 논문은 다양한 수치 조작으로 만들어졌다. 모두 일곱 가지 수법이 동원되었다. 팻 핑거(fat finger·단순한 실수), 수치 잡아늘리기(tweaks), 엉터리 평균치(averaging), 가공 데이터 만들기(constructed data), 엉뚱한 연도 비교하기, 제멋대로 잣대(definition), 입맛에 맞는 수치 고르기(cherry-picking) 등이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인구가 영국의 7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동일한 가중치로 합산되었다. 통계를 구할 수 없는 구간은 외삽(extrapolation)이나 내삽 과정에서 조작된 수치가 삽입되었다. 자료를 구할 수 없는 구간의 수치는 다른 시기의 자료가 임의 삽입되었다.

FT에 따르면 이들 조작된 수치를 걸러내면 전혀 다른 전체상이 나타난다. 영국에서는 소득 상위 10%의 소득이 10%포인트나 부풀려졌고 미국에서는 상위 1%의 소득이 오히려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데도 급증한 것처럼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FT의 폭로가 나오자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크루그먼은 “그래도 전체적인 결론은 옳다”는 어색한 논평을 내놨다. 피케티도 약간의 수치 가공을 인정한 다음 “그렇다고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항변했다. FT와는 별도로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도 피케티의 결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1980년도 미국의 드라마틱한 세제 개혁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세후 소득을 단순 비교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불황과 전쟁과 약탈적 세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피케티 주장의 골자”라고 비판했다.

진리는 어떻게 확정되는 것인가. 정치에서는 다수결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지자가 많다고 과학적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이 우리가 종종 정치를 경멸하는 이유다. 미국 경제학계는 수치 조작, 억지 해석 등 가짜 논문이 전체의 4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짓을 입증하는 데는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 정도면 충분하다. 피케티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치밀한 증거’에 의해 불평등을 규명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증거들이 의심받고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