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연결해 '지식의 브로커'라 불리는 존 브록만(오른쪽부터)과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생물학자 데이비드 헤이그,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 바다출판사 제공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연결해 '지식의 브로커'라 불리는 존 브록만(오른쪽부터)과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생물학자 데이비드 헤이그,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 바다출판사 제공
미국의 인지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2009년 공영라디오(NPR)에서 ‘다윈의 서재’란 이름의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기획은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자신의 서재에 어떤 책을 두었을까?”란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사회를 맡은 데닛은《만들어진 신》《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통섭》의 에드워드 윌슨,《과학혁명의 구조》를 펴낸 토머스 쿤,《코스모스》의 칼 세이건 등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을 것이다. 쿤과 세이건은 모두 1996년 세상을 떠났다. 1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과의 인터뷰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일종의 페이크 토크쇼다. 그나마도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은 가상 인터뷰다.

《다윈의 서재》는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페이크(가상) 기법을 적용해 56권의 과학 서적을 소개한 책이다. 첫 번째 방송에 나온 도킨스는 창조론자와 유신론자를 향해 독설을 날린다. 그는 “매우 지적인 사람들도 진화를 부정하고 경험적 근거가 없는 종교적 세계관에 집착한다”며 “우리가 초자연적 설명과 종교적 세계관에 취약한 인지 구조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세이건은 “《종의 기원》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우아한 책”이라고 존경을 표시하며 “자연선택이란 원리를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성과 정교함을 설명해내고 있다”고 감탄했다.

책의 2부는 장 교수가 진행하는 북 토크 프로그램으로 꾸며져 있다. 그는 “대부분의 도서 프로그램들은 구성상의 균형을 위한답시고 과학책을 구색 맞추기 정도로 갖다 쓴다”며 “과학책을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행위는 과학의 존재감에 대한 심각한 저평가와 현대 사회에 대한 난독증을 유발한다”고 과학 서적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이 프로그램도 실제로 제작된 바 없는 가상 프로그램이다. 그는 진화론을 연구하는 학자답게 자연선택과 진화를 다룬 도킨스의《눈먼 시계공》, 침팬지를 비롯한 여러 동물의 문화를 논한《원숭이와 초밥 요리사》(프란스 드 발 지음) 등 35권의 과학서를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장 교수는 생소한 기법으로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과학서를 접할 때 갖는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대화의 형식을 빌렸다”고 설명했다. 대담의 사회자가 데닛 교수인 것은 자신의 은사이자 이 시대의 융합 철학자에게 바치는 장 교수의 오마주다.

그는 “과학 책을 처음 읽을 때 수식이나 이론 때문에 어려워 보이지만 막상 핵심으로 가면 누구든지 읽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저자의 다양한 독서 편력에 놀라면서 한편으로 그 능청스러움에 웃게 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