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가 약세국면을 이어가면서 1년7개월여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달러화는 지난해만 해도 세계 금융시장에선 미국이 통화긴축 정책에 나서면서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됐다. 그러나 미국 경기의 조기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달러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도 이에 따라 900원대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로·일본 엔·영국 파운드·캐나다 달러·스웨덴 크로나·스위스 프랑 등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산출한 ICE 달러지수는 지난 8일(현지시간) 78.906까지 내려갔다. 이는 2012년 9월 이후 19개월여 만의 최저 수준이다.

이날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1유로당 1.3993달러로 2011년 10월 이래 최저 수준을 보였다.

지난해 말 블룸버그 조사에서 세계 주요 금융기관 전문가들은 달러지수가 올해 6월 말 82.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중앙은행(Fed)rk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달러화를 찍어내 자산을 사들이는 양적완화 규모 축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전망 속에 양적완화 종료 후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면 통화 긴축에 따라 달러화도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달러지수는 심리적 저항선인 80선 아래에서 맴돌고 있고 최근 전문가들의 6월 말 전망치는 80.7로 지난해 말보다 크게 낮아졌다.

에릭 스타인 이튼 밴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피난처로서의 국채 수익률 반등이 달러화 반등이 아닌 달러화 매도세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며 "기본적인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 배경에 대해 예상보다 더딘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물론이고 고수익을 노린 캐리 트레이드(싼 통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나라의 시장에 투자하는 것)에서 중국의 외화보유액 강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한스 레데커 세계 통화전략 책임자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서 수익률이 낮아졌기 때문에 달러화가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조달 통화로서 매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비관론이 존재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에 차이가 있어 달러화가 약세를 보인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철희 동양증권 연구원은 "가파른 실업률 하락으로 영국 중앙은행은 미국 중앙은행보다 먼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고 일본은 추가 금융완화 정책을 펴기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며 "이는 미국이 조기 금리 인상에 나서 달러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 이들에게 충격"이라고 지적했다.

달러 약세 전망으로 5년 9개월 만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원화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원화는 주요국 통화 중 달러화 대비 절상률이 가장 높은 수준이며 조만간 세자릿수 환율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 요인 외에도 달러화가 대부분 국가의 통화에 대해 약세인 현재 기조를 유지한다면 원화의 추가 강세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달러 약세가 원화에 추가 강세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원화는 현 수준을 유지하다가 3분기엔 달러당 1000원 가까이 갔다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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