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국 마비…경제로 위기 확산 "태국 6조 水프로젝트 계약지연 불가피"
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 실각에 따른 태국 정국의 혼란으로 한국이 수주한 6조원대 규모의 태국 물관리 사업도 차질을 빚게 됐다.

김문영 KOTRA 방콕 무역관장(사진)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잉락 전 총리가 해임되면서 당초 예정됐던 7월 재총선거가 어렵게 됐다”며 “이에 따라 당초 오는 10월로 예정된 태국 정부와의 물관리사업 최종 계약은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계약 체결을 위해서는 태국 정부가 추진한 물관리 사업을 국회가 승인해야 하는데 정치적 혼란으로 국회가 오는 10월 새로운 회기에 맞춰 출범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은 2011년 대홍수를 계기로 태국 정부가 25개 강에 댐과 방수로, 저수지 등을 만들어 수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추진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한국은 지난해 이 중 사업비 5조8000억원 규모의 짜오프라야강 방수로 건설과 3800억원 규모의 저수지 조성 등 2개 부문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수자원공사가 단독 응찰했고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삼환기업 등이 시공업체로 참여했다.

김 관장은 “수자원공사는 입찰 참여와 우선협상자 지위 유지를 위해 이미 약 120억원을 투입했다”며 “사업 지연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물관리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잉락 전 총리가 해임되면서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사업이 전면 재검토되거나 자칫 무산되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KOTRA는 재총선거 지연으로 신정부 구성이 늦어질 경우 10월부터 시작되는 2014년 회계연도의 정부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는 것은 물론 공공부문 프로젝트 발주도 전면 연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사업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김 관장은 “지난해 11월 과도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정치적 혼란이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국의 올 1분기 자동차 내수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나 줄었다”며 “소비 부진이 산업재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자동차, 전자를 비롯해 철강, 기계, 건설 등 전 업종에 걸쳐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6.5%를 기록했던 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9%로 추락했으며, 올 1분기에는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게다가 잉락 전 총리 해임 후 그를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대(레드 셔츠)와 반정부 시위대(옐로 셔츠) 간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면서 태국의 정치적 혼란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날 수도 방콕에서는 옐로 셔츠를 입은 반정부 시위대 수천 명이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잉락 전 총리가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앞으로 3일 안에 현정부가 완전히 물러나지 않으면 대대적인 보복을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맞서 레드 셔츠도 10일 잉락 전 총리를 초대해 지지세력의 결집을 꾀할 예정이다. 이들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사법적 쿠데타를 통해 합법적인 선거 정부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관장은 “태국 정국의 불안은 기득권층과 서민층의 대립이 원인”이라며 “국왕을 지지하는 기득권층이 헌재 등 헌법기관들을 장악해 행정부를 통제하면서 정치적 갈등이 극도로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기득권층에 속하는 태국 국가부패위원회(NACC)는 지난 8일 헌재 해임 판결과는 별개로 잉락 전 총리를 권력 남용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사실상 탄핵을 결정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