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한 회사는 노조 파업에
설립한 회사는 제품 안팔려
산더미 같은 빚에 가족도 고통
자신감이 찾아 준 새 삶
치과용 재료로 세 번째 도전
붉은 넥타이 매고 중국 공략
독한 술 마시며 거래처 뚫어
삶을 끝낼 작정이었다. 그 순간 공포가 엄습했다.
“으아아아아악!” 두 팔을 들고 비명을 질렀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패배감이 지배했던 온몸의 세포가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그때의 ‘단말마(斷末魔)’가 삶의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됐다.” 오석송 메타바이오메드 회장(60)과의 ‘맛있는 만남’은 지난달 28일 이뤄졌다. 그의 20년 단골집인 서울 잠원동 ‘진동둔횟집’에서다. 세월호 참사 뒤여서 만남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사업에 거듭 실패한 뒤 한때 자살까지 시도하려 했던 그에게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오 회장은 “본인이 아니면 그 아픔을 전부 헤아리기 힘들 것”이라며 “위로하는 것 이외에 감히 말을 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두 번의 실패가 밑거름
진동둔횟집에 들어서 자리에 앉자마자 배추, 상추, 깻잎 등 쌈채소와 대파김치, 데친 양배추, 부추무침 등 밑반찬이 올라왔다. 기본 차림은 화려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건 ‘양념장 삼총사’였다. 고추냉이를 곁들인 간장, 다진 고추와 참기름을 넣은 전통 된장, 시큼한 맛보다 달큰한 맛이 돋보이는 초장이 준비됐다.
오 회장은 “이곳은 경남 창원시 진동면에서 당일 잡은 횟감만 쓴다”며 “20년 동안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기본에 충실한 집”이라고 소개했다.
오 회장이 설립한 메타바이오메드는 몸에 흡수되는 수술용 실인 ‘생분해성 봉합원사’와 ‘치과용 재료’ 등을 생산하는 의료기기 업체다. 세계 100여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63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회사를 일구기까지 그는 죽음까지 생각했던 두 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실패는 1989년 미국 치과용 재료 회사인 한국슈어프로덕트 한국법인 인수였다. 당시 그는 이 회사의 관리이사였다. 미국 본사가 한국의 극심한 노동운동 때문에 한국법인을 폐업하겠다고 선언하자 그는 아파트를 팔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회사를 샀다. 월급쟁이였던 그가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이다. 오 회장은 치과용 재료 분야에서 회사의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노조의 투쟁으로 깨졌다. 인수 3개월 만에 노조가 쟁의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는 오 회장 가족이 살고 있던 집에까지 찾아와 꽹과리를 치며 ‘미국 앞잡이’라고 비난했다. 오 회장은 “두 딸이 초등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힘들었다”며 “가족까지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두 번째 실패는 1990년 메타바이오메드를 설립한 뒤였다. 그는 인건비가 싼 인도네시아로 가서 치과용 재료로 다시 승부를 걸기로 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주저앉았다. 생산성이 낮았고, 인도네시아산(産) 치과용 재료를 국내 치과의사들이 찾지 않았다. 남은 건 ‘산더미 같은 빚’과 ‘죽음밖에 없겠구나 하는 절망’이었다.
지하 공장에서 세 번째 도전
1993년 어느 날. 수면제 30알을 들고 그는 선친이 묻힌 경기 송추 운정공원묘지를 혼자 찾아갔다. 삶을 끝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죽을 결심을 하자 공포가 엄습했다. 술을 먹고 선친 묘지 옆에서 밤잠을 잔 탓인지 몸도 으슬으슬했다. “으아아아아악!” 그는 두 팔을 들고 비명을 질렀다. 소리를 내지른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패배감과 무력감이 지배했던 온몸의 세포가 그 순간 다시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의 ‘단말마(斷末魔)’가 그에게는 삶의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됐다. 부친 묘지 앞에서 ‘물러날 곳이 더 이상 없다’고 다짐한 그는 선린상고 동창 7명의 도움을 받아 충북 청주시 모충동에 약 200㎡ 크기의 지하공장을 차렸다. 치과용 재료 공장이었다.
오 회장은 “제일 잘 아는 것에 다시 도전한 것”이라며 “두 번이나 실패한 원인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 회장이 옛 기억을 풀어놓는 동안 이 집의 주메뉴인 회가 상에 올라왔다. 도다리, 광어, 가자미, 학꽁치 등 그날 잡은 신선한 회가 접시에 그득했다. 회는 차지고 고소하며 달짝지근했다. 홍합을 갈아 방아잎과 매운 고추를 넣어 부친 방아전도 잇따라 나왔다. 고소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별미였다. 오 회장은 직접 가져온 산삼배양주 ‘휘’를 권했다. 휘는 충북대에서 100년산 산삼을 배양해 만든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25도로 소주보다 높지만 맛은 부드러웠다.
오 회장의 세 번째 도전은 해외시장 공략이었다. 독일 등 세계 의료기기 전시회를 쫓아다녔다. 양손 가득 제품을 담은 가방을 들고 다녔다. 김학용 전북대 섬유공학과 교수와 함께 개발한 수술용 생분해성 봉합사의 중국 판로를 뚫기 위해 3박4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독한 술을 마시면서 상하이 거래처들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빨간색 넥타이를 매기 시작한 것도 중국인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오 회장은 이날도 빨간색 넥타이를 맸다.) 휘 한 잔을 권한 그는 “이 술도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 무기가 됐다”고 웃었다.
“자긍심이 필요한 때”
오 회장은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서 태어났다. 오 회장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60년대는 주판으로 계산하는 주산 교육이 활발했다. 그는 중앙국민학교 대표 주산 선수였다. 오 회장은 국민학교 6학년 때 선린상고에서 연 전국주산대회에서 우승했다. 선린상고에 특채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10만 단위까지는 암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회사가 커질수록 상고 출신이 사내 고학력 엔지니어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군대에 다녀온 뒤 단국대를 졸업했으나 의료기기 기술과는 무관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다. 오 회장이 주로 일했던 분야도 재무였다.
오 회장이 인재 관리를 위해 ‘가치관 경영’을 내세운 것은 이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객차가 될 것인가, 기관차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객차는 절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남이 끌어줘야 해요. 상대방 힘을 200% 쓰게 만드는 게 객차형 인재입니다. 하지만 기관차는 스스로 움직입니다. 다른 객차를 오히려 움직이게 만들죠. 직원들에게 어떤 인재가 될 것인지 물으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맡은 직무에 자신감’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행동에 대한 책임과 함께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된 회사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여전히 일하고 있는 것도 자긍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세월호 비극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전체가 자긍심이 결여된 때문이 아닐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선장부터 공무원까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자긍심이 없다 보니 잘못된 관행을 용인하고 책임감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좋은 습관이 인생 바꾼다”
회접시가 바닥을 보이자 오 회장은 장어탕을 주문했다. 장어를 갈아 우거지와 함께 끓여낸 탕이다. 비린 맛은 없었다. 쪽파김치 한 조각을 얹어 한 입 넣었다. 진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탕 한 그릇을 비운 시간은 밤 10시. 오 회장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 회장은 자리를 정리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인지 “메타바이오메드 본사가 있는 충북 오송으로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있는 집은 서울 마포구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하려면 오송에 있는 사택으로 가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메타바이오메드를 세웠을 때부터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뀝니다. 좋은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 인생도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허허.”
일회용 내시경 ‘아이-돌핀’ 제품은…
메타바이오메드가 최근 내놓은 일회용 내시경 카테터 ‘아이(i)-돌핀’. 카테터는 척추 디스크 등을 치료할 때 쓰는 의료기기다. i-돌핀은 카테터에 초소형 카메라를 일체화한 제품이다. 멸균해 사용하지 않고 일회용으로 쓰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없다. 기존 제품에 비해 화소가 뛰어나 환자의 치료부위를 정밀하게 촬영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오석송 회장 단골집 ‘진동둔횟집’
그 날 잡은 도다리·광어 달큰한 초장에 푹…감칠맛 일품
서울 잠원동에 있는 ‘진동둔횟집’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당일 잡은 횟감을 쓴다. 대표 메뉴는 뼈회(세코시)다. 도다리 광어 가자미 등으로 구성된 뼈회는 1인당 3만5000원이다. 학꽁치 전어 멸치 등 개별 회도 같은 값에 즐길 수 있다.
식 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도톰하게 썰려 나온다. 회를 찍어 먹는 양념장은 간장 된장 초장 등 세 가지다. 이 식당에서 직접 만든 초장은 새콤한 맛과 달콤한 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방아전 생선전 가자미구이 등 중간에 나오는 음식들도 별미다. 화려하진 않지만 원재료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장어탕 된장뚝배기 멸치국 회덮밥 등 식사 메뉴는 8000원이다. 함께 나오는 쪽파김치 대파김치 부추무침 등 밑반찬은 국내산 재료로 식당에서 직접 만든다. 예전에 ‘진동횟집’이라는 상호를 썼기 때문에 지금도 이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같은 상호의 식당이 서울에 여럿 있어 위치와 전화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02)544-2179
조미현/이준혁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