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 폴 그레이 이사
초고화질 TV, 성장 지속될 듯…커브드 TV는 더 지켜봐야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의 폴 그레이 이사(사진)가 TV 업계에 대해 고언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25일(현지시간) 터키 벨렉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IFA)’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소비자들이 가치를 느끼는 제품을 내놓아야지, 수익 확대를 위해 불필요한 유행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게 골자다.
3D는 2010년 TV 업체와 동영상 콘텐츠 업계의 최대 화두였다. 2009년 12월 개봉한 3D 영화 ‘아바타’가 인기를 끌면서 업계는 3D를 새로운 마케팅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3D 시대는 쉽게 오지 않았다. TV 업계 1위 삼성전자는 작년부터 3D를 광고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저가 3D TV를 만들어온 스카이워스 등 중국 업체도 잇따라 생산을 포기했다.
그레이 이사는 “소비자는 경험해보면 안다”며 “3D는 기본적으로 HD 화질보다 나아졌어야 했지만, 안경을 쓰고 본 3D는 HD보다 나쁜 경험이었다”고 그 이유를 분석했다. 안경을 보고 쓰는 것 자체가 불편했을 뿐 아니라, 화면은 깜빡였고 해상도는 HD보다 낮아졌다. 또 눈은 금방 피곤해졌다.
그레이 이사는 “업계가 TV가 있는 집과 영화관이 다르다는 걸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집에서 보는 TV는 영화관보다 스크린 크기가 작았고, 프로그램을 보는 사이 다른 데 신경 쓸 것이 많아 집중도가 떨어지는데 이런 요인을 무시하고 마케팅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그는 “TV 회사들은 좋은 화질과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데, 3D는 소비자에게 원하는 가치를 주는 데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최근 TV 업계가 3D를 대체해 초고화질(UHD)과 커브드(곡면)를 새 화두로 밀고 있는 것과 관련, UHD의 경우 관련 콘텐츠가 늘고 있어 55인치대 이상 대형 TV 위주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곡면 TV에 대해선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그레이 이사는 “업계가 평면에 비해 높은 제조단가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며 “커브드 TV가 시장에 안착하는지는 3~4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커브드 TV는 멋진 디자인을 갖추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통상 이런 부문에 매료돼 많은 돈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전망에 대해선 “뛰어난 기술이 항상 승리하진 않는다”며 TV를 만드는 데 있어 LCD(액정표시장치)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레이 이사는 ‘올해를 기점으로 TV 교체주기가 돌아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태블릿 PC 수요가 늘면서 세컨드 TV(집에 두 대째 놓는 TV)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아 과거에 이어져왔던 교체주기 시점이 유효한지 확신할 수 없다”며 “교체수요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겠지만 그 강도는 예상보다 낮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벨렉=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