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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사이드 人터뷰] 임석재 회장 "지재권이 뭔지 모르던 시절 '삼성' 브랜드 되찾아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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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세 최고령 변리사, 임석재 특허법인 '원전' 회장

    人生 절반을 변리사에 투자
    국내 최초 한글로 된 특허법 서적도 집필
    '아스피린' 상표 사용 등 굵직한 사건 맡아…기업들 억울함 달래줘
    소송 대리권 인정하면 특허시장 더 커질 것
    [人사이드 人터뷰] 임석재 회장 "지재권이 뭔지 모르던 시절 '삼성' 브랜드 되찾아줬죠"

    “국내 특허법원 판사는 전문가들이 아닙니다. 승진을 위해 2~3년 거치는 게 고작이어서 특허에 자신 있다고 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독일 특허법원 판사들은 평생을 한곳에서 근무합니다. 당연히 특허 판결의 오류도 많지 않죠. 이 분야 사람이라면 모두가 수긍하는 문제인데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면 통탄할 노릇입니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특허법인 원전 사무실. 임석재 원전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한 건 오전 10시께였다. 그의 나이는 올해 91세. 현직 국내 변리사 가운데 최고령이다. 한 세기에 가까운 그의 삶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시까지 쉼없이 이어졌다. “너무 무리하시면 안될 텐데….” 슬슬 걱정이 됐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조차 없었다.

    임 회장은 요즘 직접 사건을 맡지는 않는다. 그래도 오전 8시면 꼬박꼬박 출근한다. 큰 소송 사건이 있을 때는 직접 재판 서류까지 챙긴다. 그는 “특허법원에 올라가는 소송 서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리고 새로 쓰기도 한다”며 “직원들이 처음엔 기분 나빠하지만 고쳐놓은 것을 보면 다들 수긍한다”고 말했다.

    미군 매점에서 시작한 사회생활

    [人사이드 人터뷰] 임석재 회장 "지재권이 뭔지 모르던 시절 '삼성' 브랜드 되찾아줬죠"
    임 회장은 일제 치하였던 1924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국회사무처 의사과장(1960년)과 법제처 전문위원(1962년), 국회 전문위원(1967년)을 거쳐 1967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해 특허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당시는 특허를 ‘공업소유권’이라 부르던 시기였다. 한글로 된 특허 서적이 없어 일본 법전을 보고 공부하던 시절이다. 임 회장은 ‘공업소유권법’ ‘특허·실용·의장·상표 해설’ ‘특허의 이해와 전략’ 등 국내 최초로 한글로 된 특허법 서적도 썼다.

    임 회장의 학창 시절은 격변의 연속이었다. 광산업을 하는 부친의 도움으로 일제 강제동원을 피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가 해방 후 귀국했다. 하지만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머니와 출가한 누나들의 도움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들어갔지만 이번엔 6·25전쟁이 터졌다. 사회생활은 군산에 있는 미군 비행장에서 시작했다. 매점 회계사로 채용됐다. 당시만 해도 군대 물자를 빼내 파는 부정이 판치던 시기였다. 부대 내 동료들로부터 유혹이 끊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군산시청 지방주사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주사의 월급은 미군 부대에서 받던 돈의 16분의 1에 불과했다. 그는 “변리사 일 하면서도 떼돈을 벌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양심에 따라 길을 선택했다”며 “45년째 변리사 일을 탈없이 해온 것도 이 같은 결정 덕분인 것 같다”고 돌아봤다.

    1급 공직 대신 선택한 변리사

    어려운 여건 속에 대학을 마친 그는 시험 보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빼어난 학습능력 덕분이다. 우연히 석간신문에서 국회사무처가 처음으로 조사연구원을 공개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 수석으로 합격했고 도서과장을 거쳐 국회사무처 핵심 부서인 의사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4·19혁명 직후 의사과장으로 승진했는데 바로 집에 전화기가 두 대 설치되고 밤에도 다닐 수 있는 야간통행증이 나왔다”며 “당시는 한밤중에도 여당 국회부의장과 의원들이 시내 모처에 모여 의사일정을 논의했는데 그럴 때마다 의사과장도 호출했다”고 회고했다.

    변리사 시험을 보게 된 것은 한 재미동포 선배와의 인연 덕분이다. 법제처 시절 우연히 길에서 만난 선배가 미국 변리사의 위상을 얘기하며 시험 보기를 권유했다. “정권이 자주 바뀌어도 안정적으로 일을 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게 선배의 조언이었습니다. 국회로 옮기며 시험공부를 시작했는데 동료 국회 전문위원들이 말렸습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자신들 체면까지 떨어진다고. 하하.”

    임 회장이 변리사에 합격한 것은 1967년. 6회 시험이었는데 그해 합격자는 임 회장이 유일했다.

    삼성전자 브랜드 찾아준 주역

    임 회장은 45년간 숱한 사건을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삼성전자의 브랜드를 되찾아 준 일을 꼽는다. 삼성그룹은 1969년 TV를 내놓으며 전자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삼성’ 상표를 등록하려다 당시 특허국으로부터 거절당하며 난관에 봉착했다. 먼저 삼성 상표를 출원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청계천의 한 사업자가 먼저 삼성 상표를 등록했는데 이를 파는 데 2000만원, 현재 돈 가치로 5억~10억원의 큰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국내 판례에는 없지만 일본 사건을 뒤져 먼저 등록한 삼성 상표가 무효가 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냈다. 당시 삼성물산이 전자제품까지 취급했는데 상표법상 ‘삼성’이란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려면 삼성물산의 동의가 필요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청계천 사업자는 결국 수백만원만 받고 상표를 삼성전자에 넘겨줬다.

    독일 바이엘사의 진통해열제 ‘아스피린’ 상표가 국내에서 다른 회사도 사용할 수 있는 보통명사가 된 데에도 임 회장의 역할이 컸다. 바이엘사는 1970년대 한국업체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임 회장은 상표권 무효소송을 맡아 1976년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이끌었다. 바이엘사가 관련 상표 사용을 오랜 기간 묵인했다는 것을 입증해 낸 성과였다.

    특허법원 전문성 살려야

    임 회장은 1982년에는 대한변리사회장을 맡았고 국제지식재산권보호협회(AIPPI) 한국협회장(1996~2002년)과 국제변리사연맹(FICPI) 한국협회장(2001~2003년)도 역임했다. 2000년에는 원전을 국내 1호 특허법인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지식재산권 분야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에는 철탑산업훈장, 2004년에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말 그대로 한국 변리사 역사의 산증인이다.

    임 회장은 특허 관련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인터뷰에 꼭 담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변리사의 소송 대리권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일본은 특허 소송의 소비자인 기업들이 요구해 변리사가 변호사와 함께 소송을 공동 대리할 수 있게 됐다”며 “변호사 등 이익단체들의 주장이 아니라 소비자 관점에서 제도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허 판결의 오류가 늘어나는 문제도 지적했다. 요즘에는 자신이 소송에 이기면서도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뚱한 판결이 나올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전문성이 필요한 특허 사건을 특허법원에서 다루게 한 제도는 잘 도입했는데 운영을 잘못해 판결 오류가 늘어나고 있다”며 “특허법원에 오면 10년 이상은 근무하도록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행정부가 썩어도 사법부에 호소하면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어야 사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노신사의 목소리는 끝까지 힘이 넘쳤다.

    의사들도 물어보는 임석재 회장의 건강 비결은
    일주일에 5일, 호수서 5km 경보

    [人사이드 人터뷰] 임석재 회장 "지재권이 뭔지 모르던 시절 '삼성' 브랜드 되찾아줬죠"
    91세 나이에도 현직에서 활동하는 임석재 회장의 모습을 보면 건강 비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종합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을 때면 의사들도 되레 장수 비결을 묻는다고 했다.

    임 회장은 무엇보다 운동을 강조했다. 요즘에도 1주일에 5일가량은 집 근처 석촌호수에 나가 운동을 한다. 한 바퀴에 2.5㎞ 거리인 호수를 등에 땀이 날 정도의 속도로 두 바퀴 걷는다. 35년 전부터 당뇨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약의 양을 늘리거나 종류를 바꾸지 않고도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운동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먹고 싶을 때는 단 음식도 마음껏 먹는다. 그는 “당뇨약을 먹다 보니 더욱 운동의 효과를 절감한다”며 “무엇보다 운동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크게 가리는 음식이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은 충분히 먹어야 한다는 주의다. 유일하게 먹지 않는 것은 개고기다. 광산업을 하신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금노다지 바라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아버지의 당부였다. 부정 탄다는 얘기다. 고래 고기도 별미로 즐긴다. 국내에 파는 곳이 많지 않아 자주 먹지는 못한다고 했다.

    적게 먹어야 장수한다는 건강서적에 대해서는 허튼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장수 관련 책 쓴 사람을 보면 고작 70살이던데 제깟 것들이 얼마나 살았다고…”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나이가 들면 소화능력이 떨어져 저절로 소식하게 되는 거지 소식해서 장수하는 게 아니다”며 “젊을 때는 먹고 싶은 것 먹고 운동으로 조절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 약력

    1924년 충남 부여 출생
    1952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55년 국회사무처 법제조사연구원
    1960년 국회사무처 의사과장
    1969년 임석재특허법률사무소 개소
    1982~1984년 대한변리사회장
    1986년 철탑산업훈장
    1988~1992년 아시아변리사회 부회장 겸 한국협회장
    1996~2002년 국제지식재산권보호협회(AIPPI) 한국협회장
    2000년~현재 특허법인 원전 대표변리사 회장
    2004년 은탑산업훈장

    글=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사진=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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