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을 빛낸 한국 시계 장인들 "옻칠시계, 스위스 장인도 흉내 못내요"
“이건 스위스의 에나멜링 장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합니다.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한국 대표 옻칠 장인으로 꼽히는 전용복 영산대 석좌교수. 전 교수는 국내 신생 시계 브랜드 트리젠코(옛 삼족오)와 손잡고 다이얼(시계판)에 옻칠을 한 한정판 시계 일곱 점을 최근 열린 세계 최대 시계박람회 ‘바젤월드’에 전시했다. 2008년 일본 세이코를 통해 5250만엔(당시 환율로 8억여원)짜리 나전칠기 시계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그는 “금속판 위에 옻칠을 얹히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스위스 명품과 견줘 미학적으로 뒤처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1980년대만 해도 스위스, 일본에 이어 세계 3대 시계제조 강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성그룹이 시계 사업에서 철수한 1990년대를 즈음해 국내 시계산업 생태계는 급속히 무너졌다. 2000년대 후반부터 국내 시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시계인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한국 시계의 간판주자인 로만손은 국내 기업 중 해외에서 입지가 가장 탄탄하다. 올 바젤월드에서도 파텍필립부터 오메가까지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들어간 메인 홀(1홀)에 부스를 차렸다. 초대형 스크린에 간판 컬렉션 ‘아트락스’ 영상물이 쉴 새 없이 상영되는 가운데 해외 바이어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1997년부터 꾸준히 참가한 끝에 지난해부터 1홀 입성에 성공했다.

에코시계도 국내 시계업계의 ‘히든 챔피언’으로 꼽힌다. 세계적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계열인 위블로의 베젤(테두리)에 사용되는 실리콘을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의 스위스 방문 당시 위블로와 세라믹 신소재 핵심부품 개발협력 의향서를 맺고 향후 10년간 5000만달러어치 장기 공급물량을 추가 확보해 주목을 받았다.

파텍필립, 쇼파드, 벨앤로스 등 수입 브랜드 판매에 주력했던 우림FMG는 자체 브랜드 아르키메데스를 들고 해외 시장을 노리고 있다. 20~30대 남성 사이에서 ‘국민 시계’라 불릴 만큼 인기가 높은 스와치그룹 소속 티쏘를 경쟁 상대로 정조준하고 있다.

화제몰이를 위해 옻칠 시계를 한정판으로 내놓은 트리젠코는 오는 7월 공식 론칭 쇼를 열고 본격 판매에 나선다. 시계 부품의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스켈레톤 워치를 비롯, 시장에서 통할 만한 클래식한 스타일의 제품을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시계 디자인 곳곳에 고구려를 상징하는 동물로 상상 속의 새인 삼족오(三足烏)를 모티브로 삼은 점이 이채롭다. 가격대는 쿼츠(전자식)는 50만~70만원, 메커니컬(기계식)은 100만~300만원 선으로 잡았다. 이탈리아 악어가죽 시곗줄과 순금을 쓰는 등 고급화에 주력하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