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신표 웃음·재미코드로 다시 태어난 '베니스의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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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 '노래하는 샤일록'
셰익스피어와 정의신이 만나니 이런 새로운 재미와 감동의 무대가 탄생했다.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교포 극작·연출가 정의신은 최근 활동 무대를 한국으로 옮긴 듯하다. 지난해에만 ‘푸른 배 이야기’ ‘아시아 온천’ 등 4개 작품이 국내에서 상연됐다. 그의 첫 셰익스피어 작품도 국립극단 제작으로 한국 무대에 올랐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노래하는 샤일록’(사진)이다.
‘시너지 효과’가 분명했다. 400여년 전 쓰인 ‘베니스의 상인’은 정의신 특유의 해석과 연출을 통해 웃음과 페이소스(동정과 연민의 감정)가 가득한 ‘우리 시대 연극’으로 되살아났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및 인간과 삶에 대한 희망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정의신의 연극 세계는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더 빛을 발했다. 번역투 대사와 일본풍의 과장된 개그 등으로 어색하고 다소 억지스러웠던 ‘정의신’표 웃음 코드도 이번 무대에선 충분히 통했다. 국내 무대에 대한 그동안의 학습 효과도 있겠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이 가진 넉넉한 포용력 때문으로도 보였다.
공연은 샤일록을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이자 딸바보로 묘사한다. 베니스 사회에서 차별받는 유대인 샤일록이 왜 ‘가슴살 1파운드’에 집착하고 복수심에 불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그린다. 원작에선 아버지를 떠나 잘 사는 딸 제시카가 자책감과 남편의 배신 등으로 미쳐버리면서 샤일록의 인간적 아픔은 극대화된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잃은 샤일록이 딸의 손을 잡고 평화의 땅 예루살렘으로 노래하며 나아가는 장면에선 정의신 연출의 감성이 따뜻하게 묻어난다.
그렇다고 원작에 비해 샤일록의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다. 안토니오, 밧사리오, 포샤, 제니카, 로렌조 등의 인물을 하나하나 새롭게 해석해 우리 시대에 공감할 만한 캐릭터로 다시 창조했다. 노래도 제목과는 달리 샤일록이 아니라 안토니오와 제니카, 광대 란슬롯 등이 주로 한다.
셰익스피어적인 놀이성과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무대에 서양 뮤지컬 어법을 절묘하게 녹여낸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1막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이다. 커다란 천을 무대에 씌우고 배우들이 천을 흔들며 바다의 움직임을 만들고, 각 인물이 차례로 등장해 각자의 심경을 노래로 부르다 다 같이 합창하는 장면에선 전율이 흘렀다. 마이크와 스피커 등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육성과 라이브 연주로 만들어낸 음악과 무대가 일품이다.
이번 연극도 정의신의 이전 작품들처럼 ‘만연체’다. 공연 시간이 약 180분으로 상당히 길다. 그런데도 덜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의신이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 보여준 신선한 해석과 연출 덕분이다.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시너지 효과’가 분명했다. 400여년 전 쓰인 ‘베니스의 상인’은 정의신 특유의 해석과 연출을 통해 웃음과 페이소스(동정과 연민의 감정)가 가득한 ‘우리 시대 연극’으로 되살아났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및 인간과 삶에 대한 희망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정의신의 연극 세계는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더 빛을 발했다. 번역투 대사와 일본풍의 과장된 개그 등으로 어색하고 다소 억지스러웠던 ‘정의신’표 웃음 코드도 이번 무대에선 충분히 통했다. 국내 무대에 대한 그동안의 학습 효과도 있겠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이 가진 넉넉한 포용력 때문으로도 보였다.
공연은 샤일록을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이자 딸바보로 묘사한다. 베니스 사회에서 차별받는 유대인 샤일록이 왜 ‘가슴살 1파운드’에 집착하고 복수심에 불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그린다. 원작에선 아버지를 떠나 잘 사는 딸 제시카가 자책감과 남편의 배신 등으로 미쳐버리면서 샤일록의 인간적 아픔은 극대화된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잃은 샤일록이 딸의 손을 잡고 평화의 땅 예루살렘으로 노래하며 나아가는 장면에선 정의신 연출의 감성이 따뜻하게 묻어난다.
그렇다고 원작에 비해 샤일록의 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다. 안토니오, 밧사리오, 포샤, 제니카, 로렌조 등의 인물을 하나하나 새롭게 해석해 우리 시대에 공감할 만한 캐릭터로 다시 창조했다. 노래도 제목과는 달리 샤일록이 아니라 안토니오와 제니카, 광대 란슬롯 등이 주로 한다.
셰익스피어적인 놀이성과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무대에 서양 뮤지컬 어법을 절묘하게 녹여낸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1막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이다. 커다란 천을 무대에 씌우고 배우들이 천을 흔들며 바다의 움직임을 만들고, 각 인물이 차례로 등장해 각자의 심경을 노래로 부르다 다 같이 합창하는 장면에선 전율이 흘렀다. 마이크와 스피커 등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육성과 라이브 연주로 만들어낸 음악과 무대가 일품이다.
이번 연극도 정의신의 이전 작품들처럼 ‘만연체’다. 공연 시간이 약 180분으로 상당히 길다. 그런데도 덜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의신이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 보여준 신선한 해석과 연출 덕분이다.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