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회장
이웅열 회장
4일 오전 경기 과천 별양동의 코오롱그룹 본사. 전날 미국 항소법원이 듀폰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에 1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명령한 1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는 소식에 직원들은 싱글벙글했다.

증시 개장과 함께 지주사인 (주)코오롱 등 계열사 주가가 급등세로 출발하자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한 직원은 “어젯밤 11시에 연락을 받고 곧장 회사로 달려왔다”며 “연초 인명사고까지 겹쳐 그룹 분위기가 침체됐었는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룹이 활기를 되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굴레에서 벗어나 신사업 주력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이날 본사로 출근해 항소심 결과를 보고받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한 임원은 “재판 결과와 관련해 이 회장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면서도 “듀폰 측에 유리했던 1심 판결을 완전히 무효화한 의미 있는 승리인 만큼 임직원 모두가 고무돼 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주)코오롱 창립 50주년이던 2007년 기자간담회를 연 이후 공식적으로 언론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꾸준히 나왔지만 회사 경영과 관련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2009년 듀폰의 소송 제기에 이어 2011년 1심 재판부가 코오롱에 약 1조원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리는 등 연이은 외부 악재가 이 회장의 대외활동을 위축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설사 듀폰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더라도 배상액수는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회장이 좀 더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도 큰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 회사는 1심 판결 이후 매년 400억원씩 충당금을 쌓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의 35%에 이르는 규모다. 항소법원이 사건을 되돌려 보낸 만큼 올해부터 충당금 부담을 덜게 됐다.

신성장 동력인 아라미드 사업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아라미드는 강도가 높아 항공기 등 기계 부품과 방탄복 등에 쓰인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연 5000t의 아라미드를 생산하는 국내 1위 업체다.

지난해 이 회사의 산업자재 부문에서 아라미드 매출 비중은 4.5%로 낮지만 향후 항공우주 등에서 신소재로 광범위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돼 성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듀폰과 일본 데이진이 장악한 아라미드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코오롱은 세계 점유율 약 8%로 추격 중이다.

◆승기 잡은 코오롱

항소법원은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내면서 재판부 교체를 명령했다. 1심을 맡았던 로버트 페인 판사는 임용 전 이번 듀폰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로펌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는 듀폰이 1980년대 네덜란드 악조와 벌인 아라미드 특허침해 소송에 변호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코오롱은 1심을 앞두고 판사 기피 신청을 했지만 페인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듀폰이 코오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가리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특허소송과 차이가 있다. 두 소송 모두 목적은 기술 보유자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기술의 공개 여부가 쟁점이어서 특허받은 기술을 모방했는지를 따지는 특허소송과 차이가 있다.

1973년 아라미드 특허를 획득한 듀폰은 이후 악조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벌였고 결국 악조는 시장에서 물러났다. 당시 소송 과정에서 듀폰의 특허 상당 부분이 공개됐다. 1990년 듀폰의 특허가 만료되자 코오롱 등 경쟁업체들은 아라미드 개발에 나섰다.

코오롱 관계자는 “파기환송심에는 1심 재판에서 배제됐던 여러 증거를 제출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공정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해영/강현우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