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아트의 별’ 이반 나바로가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형상화한 작품 ‘짐’ 옆에 서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네온아트의 별’ 이반 나바로가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형상화한 작품 ‘짐’ 옆에 서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희망과 구원을 상징하는 빛. 그러나 때로 빛은 사람이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오는 27일까지 개인전 ‘299 792 458 m/s’를 여는 이반 나바로에게 빛은 억압과 통제의 상징으로도 비친다.

칠레 출신인 나바로는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 뉴욕 메디슨 스퀘어 대형 설치 프로젝트 등을 통해 최근 국제무대에서 ‘네온아트의 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작가다. 피노체트 독재 치하에서 성장했고 대학 교육을 받았다. 17년간 칠레를 지배한 피노체트는 국민의 외부활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빛을 활용했다고 한다. 야간 통금에다 툭하면 전기를 끊어 국민의 활동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작가에게 빛은 억압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나바로가 빛을 내거나 반사·확대하는 형광등, 네온, 거울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가 “나에게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멋진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암울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통해 자유에 대한 갈망과 희망을 얘기한다.

이번에 출품된 14점의 네온 조각 및 설치 작품은 거울을 사용해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무한한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울을 일방 투시 거울의 반사면을 바라보도록 배치하고, 그 사이에 조명을 투사해 무한히 반복되는 투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는 이런 독특한 작품을 통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으로 유도한다.

나바로는 2011년부터 세계적인 고층 건물을 네온조각으로 변환하는 ‘천국 또는 라스베이거스’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사막(컬럼비아 센터)’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네온과 일방투시 거울을 사용해 관객은 마치 초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작품마다 ‘SHOUT’ 같은 간단한 단어를 포함시켜 놓고 있는데, 이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 메시지를 함축하는 장치다.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형상화한 ‘짐(BURDEN)’도 선보인다. 작가는 “건물 형상이 추상적이고 밑으로 처진 듯한 느낌이 들어 짐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출품작 중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작품은 네온 램프로 만든 ‘현대 울타리’다. 2011년 뉴욕의 아모리쇼에서 첫선을 보인 시리즈 작품으로, 이번에 한국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했다. 지하 전시실을 대각선으로 가르며 설치된 이 작품은 여느 작품과 달리 관객의 접근을 제한한다. 현대 사회를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한 은유다. (02)2287-350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