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기 성균관장 "부부생활 정결하고 어른 공경하면 누구나 유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8일 취임 서정기 성균관장이 말하는 '생활속의 유교'
운동권 몸담다 대학서 퇴학도
"성균관 빚 75억…그래도 괜찮다"
儒學의 목표는 '현실에서 행복'
운동권 몸담다 대학서 퇴학도
"성균관 빚 75억…그래도 괜찮다"
儒學의 목표는 '현실에서 행복'
“성균관의 1년 예산이 10억원 정도인데, 관장이 돼서 들어와 보니 빚이 75억원이나 있어요. 그래도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날마다 신이 나고 힘이 넘쳐요. 비록 가난하지만 이제 도(道)를 펼칠 수 있게 됐으니까요.”
28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 명륜당에서 취임식을 하는 서정기 신임 성균관장(76·사진)은 26일 인사동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균관은 전임 관장의 국고보조금 횡령 사건으로 1년 가까이 내홍을 겪었다. 서 관장은 지난 13일 선거에서 5명의 후보를 제치고 임기 3년의 새 수장에 선출됐다. 그는 “다른 후보들은 전임 관장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고 대부분 돈도 많은데, 빈털터리인 내가 당선된 것 자체가 개혁이고 정화 아니겠느냐”고 했다.
1967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서 관장은 젊은 시절 ‘운동권’이었다. 4·19 혁명과 통일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5·16 군사반란에 반대하다 종로경찰서에 석 달 넘게 갇혀 있었고, 이 때문에 대학에서 퇴학당했다. 재입학해 졸업했으나 1979년 유신독재에 반대하다 구금되기도 했다. 이런 일로 유림에서 ‘파문’당하다시피 한 그는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줄곧 유교 경전을 강의하고 5경(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과 5서(논어·맹자·중용·대학·예운) 등을 새롭게 주석해 47권의 책으로 펴냈다.
평소 “유학의 아름다운 가치는 정치·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보다 사회·문화적으로 문명한 시대를 건설하는 전통에 있다”고 강조해 온 그는 유교의 ‘현세행복론’을 강조했다.
“기독교에는 천당, 불교에는 극락이 있듯이 유교는 이상세계를 현세에 구현하자는 현세이상을 추구합니다.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보다 살아서 만인이 행복을 누리는 게 합리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유림이 하늘과 귀신, 사람과 금수(禽獸)도 동의하는 왕도정치, 대도(大道)정치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유교를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으로 보는 데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세상 만물은 홀로 존재하면 불안하므로 반드시 짝을 지어야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상대방의 독립적인 인격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컨대 부부유별(夫婦有別)이란 부부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각별하므로 서로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어른과 아이, 벗과 학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림의 개념에 대해서도 현대적 해석을 제시했다. 서 관장은 “요순시대의 성왕유교, 공자시대의 성현유교와 그 뒤를 이은 선비유교가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며 “민중유교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상의 은공에 감사하며 제사를 지내고, 부부생활을 정결히 하면서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 간에 믿음이 있고, 나라에 세금을 잘 내고 살면 모두가 유림”이라고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28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 명륜당에서 취임식을 하는 서정기 신임 성균관장(76·사진)은 26일 인사동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균관은 전임 관장의 국고보조금 횡령 사건으로 1년 가까이 내홍을 겪었다. 서 관장은 지난 13일 선거에서 5명의 후보를 제치고 임기 3년의 새 수장에 선출됐다. 그는 “다른 후보들은 전임 관장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고 대부분 돈도 많은데, 빈털터리인 내가 당선된 것 자체가 개혁이고 정화 아니겠느냐”고 했다.
1967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서 관장은 젊은 시절 ‘운동권’이었다. 4·19 혁명과 통일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5·16 군사반란에 반대하다 종로경찰서에 석 달 넘게 갇혀 있었고, 이 때문에 대학에서 퇴학당했다. 재입학해 졸업했으나 1979년 유신독재에 반대하다 구금되기도 했다. 이런 일로 유림에서 ‘파문’당하다시피 한 그는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줄곧 유교 경전을 강의하고 5경(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과 5서(논어·맹자·중용·대학·예운) 등을 새롭게 주석해 47권의 책으로 펴냈다.
평소 “유학의 아름다운 가치는 정치·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보다 사회·문화적으로 문명한 시대를 건설하는 전통에 있다”고 강조해 온 그는 유교의 ‘현세행복론’을 강조했다.
“기독교에는 천당, 불교에는 극락이 있듯이 유교는 이상세계를 현세에 구현하자는 현세이상을 추구합니다.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보다 살아서 만인이 행복을 누리는 게 합리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유림이 하늘과 귀신, 사람과 금수(禽獸)도 동의하는 왕도정치, 대도(大道)정치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유교를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으로 보는 데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세상 만물은 홀로 존재하면 불안하므로 반드시 짝을 지어야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상대방의 독립적인 인격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컨대 부부유별(夫婦有別)이란 부부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각별하므로 서로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어른과 아이, 벗과 학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림의 개념에 대해서도 현대적 해석을 제시했다. 서 관장은 “요순시대의 성왕유교, 공자시대의 성현유교와 그 뒤를 이은 선비유교가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며 “민중유교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상의 은공에 감사하며 제사를 지내고, 부부생활을 정결히 하면서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 간에 믿음이 있고, 나라에 세금을 잘 내고 살면 모두가 유림”이라고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