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노트] '구멍 가게 사냥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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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영 기자 ] 편의점은 유통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장 엔진'을 장착한 곳이다.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한 데다 오랜 경기불황 탓에 '합리적인 소비'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 잠재력 많은 유통채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뼈아픈 성장통을 겪고 있다. 가맹점주에게 '공공의 적'으로 불리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평가도 나온다. 질적 성장보다 양적 팽창에만 몰두, 균형을 잡지 못한 성장판에서 '갑(甲)의 횡포'가 자라난 것이다.
'경제민주화 이슈'라는 거대한 부메랑이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자 편의점 가맹본부는 일제히 고개를 숙여 잘못을 시인했다.
그 동안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온 편의점은 설상가상, 공정거래위원회가 휘두른 칼날도 맨손으로 잡을 수밖에 없게 됐다.
편의점 가맹본부는 개인사업자(가맹점주)의 눈치를 보고 작은 목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이런 약자의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본 약탈자도 생겨났다. 눈치빠르게 가맹본부의 약점을 파고 든 것이다.
가맹본부가 발 벗고 나서서 가맹점주와 '동반 성장의 길만 걷겠다'고 공개적으로 사과했지만 약탈자들은 인정사정 봐 줄리가 없다.
증시엔 자본 없이 기업을 인수해 회삿돈을 빼돌리는 이른바 '기업 사냥꾼'이 있다. 이를 벤치마킹한 '구멍 가게 사냥꾼'이 등장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이 사냥꾼은 서울·수도권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와 부동산 정보를 일거에 확보, 재개발·재건축 일대를 비롯한 신축 오피스텔 공사현장까지 탐방해 먹잇감을 찾아나선다고 한다.
표적은 바로 '○○○ 슈퍼'. 십 수년째 동네 주민들과 동거동락하며 작은 먹거리를 팔아온 추억의 '구멍 가게'가 목표물이다.
'구멍가게 사냥꾼'은 많은 정보와 인맥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기존 가게 주인을 끈질기게 설득, 먼저 가게를 비교적 싼 값에 인수한다고 한다.
가게를 넘겨받으면 기회를 노리고 작전에 돌입한다. 경제민주화 이슈로 타오른 '골목상권'을 방패로 삼고, 가맹본부와 접촉해 모종의 거래를 시도하는 방식이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홈플러스까지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면서 더욱 몸집이 커진 편의점 시장. 이 때문에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기존 '빅4'까지 점포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이다.
예정 오픈 지역을 선점해 대형자본을 기다려 일종의 '1인 시위'를 준비하는 식이다. 항의의 핵심은 골목상권 침해다. 언론 제보 협박과 청와대 민원 등도 물론 잇따른다.
경제민주화 이슈로 위축된 가맹본부의 약점을 보기 좋게 악용한 사례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편의점 가맹본부와 협의 또는 합의해 당초 인수 가격보다 웃돈을 얹어 받은 뒤 사냥꾼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잔뼈 굵은 대형 유통채널이 너무 쉽게 이용당하는 모습이다. 반대로 '구멍 가게 사냥꾼'을 유통채널이 이용하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사실 국내에 편의점이 생겨난 이후로 가맹본부가 점포 확장을 위해 짜놓은 기본적인 영업전략은 '새 편의점을 지어 옛 편의점을 없앤다'라고 한다.
'불멸의 원칙'이라고까지 업계 관계자는 덧붙였다. 가맹본부 입장에서도 사냥꾼의 존재가 손해 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언론을 통해서든 법적 이슈로든 아직까지 구멍 가게 사냥꾼의 존재가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에는 일반 소매점이 약 10만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편의점은 2만4500여개에 불과하고 유통시장에서 편의점 비중 역시 4.2%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동네 슈퍼마켓은 한국의 독특한 일반소매점 형태로도 불린다. 일본만 하더라도 일반 소매점의 모든 형태가 편의점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운영중인 매장수도 80여개와 50여개에 불과하다. '빅4'가 7000~8000개씩 운영중이니 점포 확장을 위한 영토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 질 것이다.
1인 가구 시대를 등에 엎고 성장가도를 달려야 할 편의점 업계. 또 아픈 성장통을 견디면서 가맹점주의 손을 맞잡은 가맹본부. 웃돈을 노린 사냥꾼까지.
경제민주화 이슈로 가맹점주와 동반성장의 길이 닦이고 있지만, 정작 십 수년 간 동네를 지켜온 '구멍 가게'가 내민 손을 잡은 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한 데다 오랜 경기불황 탓에 '합리적인 소비'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 잠재력 많은 유통채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뼈아픈 성장통을 겪고 있다. 가맹점주에게 '공공의 적'으로 불리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평가도 나온다. 질적 성장보다 양적 팽창에만 몰두, 균형을 잡지 못한 성장판에서 '갑(甲)의 횡포'가 자라난 것이다.
'경제민주화 이슈'라는 거대한 부메랑이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자 편의점 가맹본부는 일제히 고개를 숙여 잘못을 시인했다.
그 동안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온 편의점은 설상가상, 공정거래위원회가 휘두른 칼날도 맨손으로 잡을 수밖에 없게 됐다.
편의점 가맹본부는 개인사업자(가맹점주)의 눈치를 보고 작은 목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이런 약자의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본 약탈자도 생겨났다. 눈치빠르게 가맹본부의 약점을 파고 든 것이다.
가맹본부가 발 벗고 나서서 가맹점주와 '동반 성장의 길만 걷겠다'고 공개적으로 사과했지만 약탈자들은 인정사정 봐 줄리가 없다.
증시엔 자본 없이 기업을 인수해 회삿돈을 빼돌리는 이른바 '기업 사냥꾼'이 있다. 이를 벤치마킹한 '구멍 가게 사냥꾼'이 등장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이 사냥꾼은 서울·수도권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와 부동산 정보를 일거에 확보, 재개발·재건축 일대를 비롯한 신축 오피스텔 공사현장까지 탐방해 먹잇감을 찾아나선다고 한다.
표적은 바로 '○○○ 슈퍼'. 십 수년째 동네 주민들과 동거동락하며 작은 먹거리를 팔아온 추억의 '구멍 가게'가 목표물이다.
'구멍가게 사냥꾼'은 많은 정보와 인맥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기존 가게 주인을 끈질기게 설득, 먼저 가게를 비교적 싼 값에 인수한다고 한다.
가게를 넘겨받으면 기회를 노리고 작전에 돌입한다. 경제민주화 이슈로 타오른 '골목상권'을 방패로 삼고, 가맹본부와 접촉해 모종의 거래를 시도하는 방식이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홈플러스까지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면서 더욱 몸집이 커진 편의점 시장. 이 때문에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기존 '빅4'까지 점포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이다.
예정 오픈 지역을 선점해 대형자본을 기다려 일종의 '1인 시위'를 준비하는 식이다. 항의의 핵심은 골목상권 침해다. 언론 제보 협박과 청와대 민원 등도 물론 잇따른다.
경제민주화 이슈로 위축된 가맹본부의 약점을 보기 좋게 악용한 사례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편의점 가맹본부와 협의 또는 합의해 당초 인수 가격보다 웃돈을 얹어 받은 뒤 사냥꾼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잔뼈 굵은 대형 유통채널이 너무 쉽게 이용당하는 모습이다. 반대로 '구멍 가게 사냥꾼'을 유통채널이 이용하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사실 국내에 편의점이 생겨난 이후로 가맹본부가 점포 확장을 위해 짜놓은 기본적인 영업전략은 '새 편의점을 지어 옛 편의점을 없앤다'라고 한다.
'불멸의 원칙'이라고까지 업계 관계자는 덧붙였다. 가맹본부 입장에서도 사냥꾼의 존재가 손해 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언론을 통해서든 법적 이슈로든 아직까지 구멍 가게 사냥꾼의 존재가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에는 일반 소매점이 약 10만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편의점은 2만4500여개에 불과하고 유통시장에서 편의점 비중 역시 4.2%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동네 슈퍼마켓은 한국의 독특한 일반소매점 형태로도 불린다. 일본만 하더라도 일반 소매점의 모든 형태가 편의점이다.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운영중인 매장수도 80여개와 50여개에 불과하다. '빅4'가 7000~8000개씩 운영중이니 점포 확장을 위한 영토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 질 것이다.
1인 가구 시대를 등에 엎고 성장가도를 달려야 할 편의점 업계. 또 아픈 성장통을 견디면서 가맹점주의 손을 맞잡은 가맹본부. 웃돈을 노린 사냥꾼까지.
경제민주화 이슈로 가맹점주와 동반성장의 길이 닦이고 있지만, 정작 십 수년 간 동네를 지켜온 '구멍 가게'가 내민 손을 잡은 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