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한 합판 제조회사에서 근로자가 합판 가공을 하고 있다. 한경DB
국내의 한 합판 제조회사에서 근로자가 합판 가공을 하고 있다. 한경DB
수입합판 규제 문제를 둘러싼 수입업체와 국내 생산업체 간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핵심은 ‘합판의 품질정보 표기방식’이다. 원산지와 제조일자, 등급 등을 표기한 품질표기서를 제품의 앞뒷면에 찍을 것인지, 측면에도 찍도록 허용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수입업체들은 측면에 찍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선창산업 이건산업 등 국내 제조회사들은 앞뒷면에 찍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측면이냐 앞뒷면이냐

문제의 발단은 합판 주무부처인 산림청이 지난해 5월부터 ‘목재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시행하면서부터다. 개정안은 합판 품질정보 표기를 합판 각 낱장의 앞면 또는 뒷면에 찍도록 의무화했다. 그동안은 표기방식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수입업체들은 이 같은 규제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품질정보 표기는 생산업체에서 합판을 쌓은 후 롤러 등을 위아래로 움직여 측면에 일괄적으로 찍었다. 그러나 새로운 규제안이 나오면서 합판을 한 장씩 들어내 찍게 됐다.

국내 제조업체들은 생산 때부터 각 낱장에 품질표기를 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수입업체들은 해외 생산업체에 재공정을 요청해야 한다. 해외 생산업체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제품만 따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수출이 결정된 합판에 대해 일일이 다시 찍어야 한다. 수입업체 관계자는 “이같이 재공정에 들어가게 되면 수입 단가가 15~20% 정도 올라가게 되고 수입 시기도 늦어진다”고 설명했다.

○수입업체 “규제 부작용 크다”

산림청이 이 같은 규제를 도입한 이유는 ‘허위 표시’를 막기 위해서다. 산림청 관계자는 “측면 표기를 허용하면 수입업체가 생산 시점이 아니라 원하는 특정 시점으로 품질표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업계 보호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 합판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8400억원. 이 중 70%는 외국산이다. 그동안 국내 제조업체들은 “외국산이 밀려들면서 국내산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수입업계는 규제의 ‘부작용’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수입업체 모임인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제조사들이 이를 기회로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산에 대해 반덤핑과세를 부과한 이후 가격이 인상되기도 했다”며 “표기방식에 제한을 두면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합판을 쓰는 건설사나 일반 기업들도 피해를 입는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합판은 건축용 가설재나 수출용 포장 박스 등에 주로 쓰이고 있다.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 관계자는 “규제 때문에 건설사나 기업들은 비싼 합판을 사용해야 하고 합판 구매 시 한 장씩 일일이 검사해야 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양쪽 입장 적절하게 반영 중”

산림청은 국내 제조업체와 수입업체의 요구 사항을 정책에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2009년부터 E2(포름알데히드 방산량 1.5~5㎎/L 미만) 등급 합판은 수입이 금지돼 왔다. 산림청은 오는 9월부터 실외 사용 목적에 한해 E2 등급 합판 수입을 허용키로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E2 등급 합판 수입은 수입업계의 요청을 반영했고 품질표기 방식에 대해선 국내 제조업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