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받아들여야"…편파판정 논란에 담담
18년 피겨인생 뒤로하고 IOC 선수위원 도전할 듯
김연아는 은퇴 무대의 프로그램 콘셉트를 ‘그리움’으로 잡았다. 18년 피겨 인생을 돌아보며 느꼈던 아쉬움과 그리움을 팬들에게 전해주고 떠나겠다는 의지였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의 금메달에 흥분한 러시아 팬들의 함성과 한국 팬의 안타까운 탄식이 뒤섞인 가운데 본분을 다한 ‘여왕’은 미소를 지으며 은반과 작별했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태어난 김연아는 유럽과 미국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바꿔놓는 기폭제였다. 또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연아 키즈’들이 생겨나는 등 직간접적으로 한국 동계스포츠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판정 논란에 ‘쿨’한 김연아
김연아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총점 219.11점을 따내 소트니코바(224.59점)에 이어 2위를 한 결과를 놓고 개최국 러시아의 홈 텃세가 판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피겨 전문가들의 ‘편파 판정’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지만 모든 짐을 내려놓은 피겨 여왕의 반응은 오히려 ‘쿨’했다.
김연아는 “연기가 끝나고 여러 가지 기분이 교차했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며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 실수 없이 마친 것에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점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점수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므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에 만족을 안 하면 어떡하겠느냐”고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연아는 “좋은 결과를 기대했지만 2등을 했다”며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고 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엄마에게 ‘저보다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을 줬다고 생각하자’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고통
1996년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김연아는 피겨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혜성처럼 나타난 기대주였다. 김연아는 2006년 3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면서 ‘피겨 요정’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2006~2007시즌 시니어 무대에 진출, 각종 기록을 새로 쓰며 피겨 역사의 신기원을 연 김연아의 발걸음은 기나긴 부상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양쪽 스케이트날에 의지해 빙판을 달리고 뛰어올라야 했던 탓에 무릎, 허리, 꼬리뼈, 고관절, 발까지 곳곳에 부상을 달고 살았다.
김연아는 대회 직후 인터뷰에서 “연기를 마치고서는 ‘끝났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너무 힘들어 빨리 지쳤는데,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해내서 기뻤다”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극도의 긴장감과 성적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려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체력적·심리적 한계를 느꼈는데 이겨냈다. 내 경기력에는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스포츠 외교관으로 새출발
김연아는 자신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지금은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올림픽이 끝났기 때문에 한국에 여러 가지 바쁜 일이 있겠지만 특별히 구체적으로 정해진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스포츠와 관련된 행정이나 외교에서 새 길을 찾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김연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하겠느냐”는 질문에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에 참가하면서 국제 스포츠계의 움직임을 직접 보고 익힌 실무 경험은 이런 가능성을 더욱 커 보이게 한다.
후배들의 성장에도 한몫할 전망이다. 김연아는 이번에 함께 출전한 후배 김해진(17)과 박소연(17)에 대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를 해 저도 아쉽다”며 “큰 경기를 치른 자체가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이제 제가 스케이팅을 하진 않지만 뒤에서 지켜보겠다”고 응원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