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레노버다
다시 레노버다
“뱀이 코끼리를 삼켰다.” 2005년 중국 레노버가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하자 ‘레노버가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후진국 중국 기업이 문화가 다른 선진국 미국 기업을 인수해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이었다.

그러나 레노버의 IBM PC사업부 인수는 무려 3년간 주도면밀하게 검토한 사안이었다. 2002년 IBM이 인수를 처음 제안했을 때 레노버는 이를 거절했다. 2년 뒤 다시 제안이 왔을 때야 류촨즈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고, 이후 13개월간의 준비 과정을 거친 다음 코끼리를 삼켰다.

‘다시 레노버다(再聯想)’는 레노버의 세계화 10년을 기록한 책이다. 2002년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 30%를 달성한 레노버는 양위안칭 사장 등 고위 임원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연수하면서 글로벌 인수합병(M&A)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진행한 IBM PC사업부 인수, 독일 PC업체 메디온 인수, 일본 NEC와의 합작 등 굵직한 M&A의 전말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레노버는 단 두 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인수의 목적을 명확히 했다. 해외 진출 목표를 설정하고 그 과정에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집요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문화의 융합이었다. 다른 기업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IBM PC사업부를 인수한 뒤 레노버는 즉시 본사를 미국으로 옮겼고 양위안칭 사장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사했다. 또 윌리엄 마멜리오 전 델 부사장 등 현지 인력을 채용하고 회사의 공식 언어를 영어로 채택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준비된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류 회장은 레노버의 성공 요인으로 우수한 인재, 특히 열정과 전략을 갖춘 경영진을 꼽는다. 그들이 만들어낸 글로벌 전략과 중국적 가족문화가 레노버를 가장 세계화된 중국 기업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레노버가 이미 국제화에 성공했다고 단언한다. 이런 자신감이 최근 IBM의 서버사업부와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등 추가적인 대형 M&A로 이어졌는지 모른다.

중국에서 레노버를 다룬 서적은 수십종에 달한다. 그러나 레노버가 공식적으로 저술을 지원하고 공인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창업자인 류촨즈와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양위안칭이 추천의 글을 썼다. 저자인 장샤오핑은 중국 기업사와 중국 기업가의 전기를 써온 경제 전문 작가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