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했던 분위기와 달리 대책회의때 실무자 몰아쳐
"철새 이동경로 인근엔 가금류 사육 금지" 검토
이 장관은 AI 발생 이후 25일간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지난 설 연휴에도 상황실이 있는 정부세종청사에 계속 머물렀다. 하루하루가 AI 확산이냐 아니냐의 기로였기 때문이다.
연휴 직전 경기·충청 지역에 일시이동제한(스탠드스틸) 조치를 결정한 것도 이 장관이다. 자문기구인 가축방역협의회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업계 피해가 크다며 반대했다. 자칫 사후적으로 책임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이 장관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농가와 국민에게 경각심을 줘야 추가방역의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농식품부 주변에선 이번 AI 사태를 계기로 이 장관의 리더십이 차분한 학자에서 책임형 장관으로 바뀌고 있다고 평했다. 한 실무자는 “오전 대책회의 때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참석자들을 긴장케 한다”며 “부드럽고 온화했던 취임 초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전남 나주·영암 현장방문에서 차량 소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보자마자 전국 주요 진입로에 U자형 소독시설 설치를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AI는 쉽게 잡힐 기미가 없다. 육상경로 전파는 어느 정도 막아냈지만 철새가 날아다니는 길목까지 차단하진 못했던 것이다. 그게 이 장관의 가장 큰 고민이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최근 “방역조치의 실효성을 높여달라”고 주문하고 나섰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
최근 AI 때문에 토종닭 출하를 못해 피해를 본 한 농민이 음독자살한 사건도 큰 부담이다. 소식을 들은 이 장관은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했겠느냐. 농정 책임자로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침통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10일 이 장관은 AI 관련업계 간담회로 달려갔다. 농가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나서 닭·오리를 수매해줄 수는 있지만 예산에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다. 살처분 보상금을 전액 국비로 지원해달라는 지방자치단체와의 의견 조율도 난제다. 이 장관은 “100% 중앙에서 부담을 하면 지자체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며 국비 지원에 난색을 표한 상태다. 하지만 지자체 재정 또한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 장관은 이번 AI를 계기로 축산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정책자금 지원 등을 활용해 철새 이동경로 인근엔 가금류 사육을 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