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文化되는 정리해고…경영난 기업 '탈출구' 막히나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7일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국회가 기업 경영상 해고 요건을 크게 강화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산업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기업들은 정리해고를 엄격히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사실상 기업이 문을 닫기 전까지 정리해고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이번 쌍용차 판결에 고무된 노동계에서 잇따라 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분위기다.

◆해고 요건 강화, 해악이 더 크다

死文化되는 정리해고…경영난 기업 '탈출구' 막히나
근로기준법 제24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은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법 조항이다. 기업이 경영난에 빠졌거나 사업의 매각, 인수, 합병 등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에 한해 경영상 해고(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9일 산업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국회는 이달 중 이 경영상 해고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현행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기업의 양도, 인수, 합병을 해고 요건에서 제외했다.

또한 자산의 매각, 근로시간 단축, 희망퇴직, 업무 조정 및 배치전환 등 다른 5~6가지 해고회피 노력을 모두 이행한 뒤에야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홍영표, 정청래, 심상정 등 야당 의원뿐만 아니라 김성태, 최봉홍, 이종훈 등 여당 의원들도 각각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어서 논의만 되면 통과 가능성이 높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의 핵심을 해고 근로자 보호라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보는 게 문제”라며 “경영상 해고의 본질은 소수 근로자의 희생으로 다수 근로자가 직업을 유지하게 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경영상 해고 요건을 강화하면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기업 회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이며 자칫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노동환경정책팀장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과거 쌍용차나 한진중공업처럼 인력 감축 등을 통해 회생한 기업들이 나오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 유연성 ‘최악’

기업들은 지난 7일 서울고법이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주자 앞으로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동계 안팎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른 사업장까지 해고무효 소송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지난 7일 판결 후 성명을 내고 “경영상 해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근로기준법 때문에 쌍용차를 비롯한 다수 사업장에서 이것이 악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홍보기획본부장은 “대법원도 같은 판결을 내리면 지난해부터 무급휴직자 455명 복직에 이어 희망퇴직자 복직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다른 기업들도 정리해고자들의 해고무효 확인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경영상 해고된 인원은 총 55만7231명에 달한다. 산업계 전반으로 이와 유사한 소송이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경영상 필요에 따른 정리해고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근로자 해고 요건이 강화되면 기업이 고용을 회피하면서 고용 경직성이 커질 것이란 주장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정규직을 해고하기 어렵게 만들수록 기업은 비정규직을 늘리게 된다”며 “정규직은 유연화하고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최진석/강현우 기자 iskra@hankyung.com